(10) 옛 문헌에 나온 봉수와 연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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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옛 문헌을 통해 제주 방어유적 소개
▲ 탐라도(耽羅圖·1678~1700년)에 나온 제주목(濟州牧)과 5진 및 연대와 봉수.


1439년(세종 21) 제주목사 겸 안무사(按撫使)로 부임한 한승순은 본주(本州·제주목)는 동쪽 김녕부터 서쪽 판포에 이르기까지 봉화대와 망루를 겸한 장소는 10곳이라고 밝혔다.

또 대정현은 서쪽 차귀에서 동쪽 거옥(居玉·서귀포시 하원동 구산봉)까지 5곳이며, 정의현 서쪽에서 북쪽 지말산(只末山·구좌읍 종달리 지미봉)까지 7곳이라 기록했다.

한승순은 장계를 올려 외적이 만약 상륙하면 육군으로 공격하고 수군은 협공해 잡는 것이 좋은 계책이라며 장계를 올렸다.

1679년(숙종 5) 정의현감으로 부임한 김성구가 일기체 형식으로 쓴 남천록에 따르면 황당선(荒唐船·수상한 배)이 수평선에 나타나면 횃불을 2개(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군사들이 약속된 장소에 집결에 명령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또 배가 가까이 접근하면 3개를 올리고 적이 상륙하면 군사들이 성을 지킨다고 기록했다.

1702년(숙종 28)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쓴 남환박물에는 사면을 둘러가며 봉수와 연대가 63곳이 있다고 밝혔다.

각각에 별장과 봉군을 두어 밤낮으로 지킨다. 동서로 연락하면 영문에 도달하게 된다.

봉수는 평상 시 1개, 황당선이 나타나면 2개, 지경에 가까이 오면 3개, 지경을 침범하면 4개, 접전을 벌이면 5개를 올린다. 만약 구름과 안개로 상응을 못하면 구전(口傳)으로 알린다고 기록했다.

1782년(정조 6) 제주순무어사로 부임한 박천형은 보고서에서 대개 봉대(烽臺)는 멀리서 적선(賊船)이 바다를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곳이고, 연대는 가까이에서 적선이 정박하는 것을 관찰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 제주의 방어유적에 대한 옛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1454), 동국여지승람(1481),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탐라지(1653), 탐라방영총람(1760~1770), 탐라지초본(1842~1843),제주병제봉대총록, 제주읍지 등에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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