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열린 섬,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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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뉴 언론인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뉴질랜드에서도 제주를 안다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한국인이야 안 가본 사람이 거의 없을 테지만 외국인 중에 제주를 안다는 사람을 보면 놀랍고 신기하다. 혹시 한국인과 결혼이라도 한 게 아닐까 싶어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한 번은 제주에 몇 개월 동안 살며 목수 일을 했다는 뉴질랜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오클랜드에 있는 어느 수영장 사우나에서 수영복만 입고 피차 땀을 빼고 있을 때다.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쳤는데 일사천리로 제주 얘기까지 이어졌다.

대만 사람과 제주 얘기를 한 적도 있다. 딸이 제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딸이 사진에 담아온 제주를 보았다며 반가워했다. 고향이 만들어준 뜻밖의 인연이었다. 이 밖에도 러시아 사람, 중국 사람 등 제주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고향은 어디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이민사회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십여 년 전 이민 올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고향은 언제까지나 바다 건너 저 멀리 에 외로운 섬으로 조용히 남아 있을 줄 알았다. 오클랜드에서 낯선 사람들과 무릎을 맞대고 고향 얘기를 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만큼 빠르게 세상이 변했다는 얘기다. 제주가 세계 속의 섬으로 멋지게 떠올랐다는 증거다.

육지를 오가는 교통수단이 변변치 못한 시절에 제주는 변방이었다. 고립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좋은 유배지였다. 6~70년대까지만 해도 바람이 거세지고 바다가 하얗게 뒤집히면 육지와 왕래를 끊고 끙끙 앓는 섬이 제주였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제주의 모든 게 달라졌다. 제주가 세계로 나갔고 세계가 제주로 들어왔다. 섬이 고립의 상징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가기에 아주 좋은 전진기지라는 사실을 제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야 한다. 환경이나 입지가 아무리 좋아도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주도해야 개화기 조선 사람들이 맛보았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자본만 해도 그렇다. 그들의 손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제주의 발전이 중국인들의 돈 가방에 달린 것처럼 비치는 건 잘못이다. 비전과 전략도 없이 외국자본 끌어들이기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지방자치단체들을 보면 딱할 정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제주가 이제 외국인 투자 유치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인허가가 난 사업도 종종 뒤집히는 모양이다. 잘못된 일이라면 어떤 단계에서도 바로잡을 수 있고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게 용기이고 책임 있는 행동이다. 다만 왜 사전에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투자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느냐는 아쉬움은 남는다.

뉴질랜드에는 외국인투자심의국이라는 게 있다. 외국인들의 투자 건을 사전 심의해 가부를 결정한다. 뉴질랜드도 제주 못지않게 중국인들이 돈을 싸들고 달려오는 곳이다. 하지만, 투자 액수가 커질수록 심사의 문턱은 높아진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뉴질랜드 경제와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각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투자를 유치할 때 모든 것을 내줄 것처럼 얘기하다 환경훼손, 시민단체 반대 등 구차한 이유를 내세우며 뒤늦게 물리자고 하는 민망한 일은 피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 고한성씨는 서귀포시 성산읍 출신으로 1982년 연합통신에 입사해 15년 동안 북한부, 정치부, 국제부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1997년 뉴질랜드로 이주했으며 연합뉴스 통신원으로 뉴질랜드 소식을 한국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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