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내가 지어 내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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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 대각사 주지

불가(佛家)에서는 오다가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은 300생의 인연이요, 같은 자리에 앉아 잠시 여행하는 동석대면의 인연도 500생의 인연이며, 같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인연은 700생의 인연, 그런가 하면 부모형제자매로서 피를 나누어 갖는 혈연지간의 인연은 900생의 인연이라 일컬으며 부부로서 평생의 반려자가 되는 귀한 인연은 천생연분(天生緣分)의 인연이라 부른다. 또한 이보다 더욱 지중(至重)한 인연이 있으니 바로 스승과 제자로 만나는 희유한 인연이 있는데 이를 만생지인연(萬生之因緣), 곧 1만년 만에 한 번을 만나는 참으로 기연(奇緣)을 두고 하는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매일 만나거나 스치는 인연들이 있다. 그중에는 왠지 모르게 주고받는 것이 없는데도 친구처럼 다정다감한 관계도 있는가 하면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떨떠름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세상살이에 답이 없을 때는 ‘전생록(前生錄)’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 세상사에 고개가 갸웃거려질 때마다 나는 모든 일이 전생에 내가 지어 받은 결과일 뿐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겨 그 모든 책임소재를 내 스스로에게 묻는 까닭에 이제는 세상만사가 이해가 안 될 일이 없게 되었다.

부처님은 ‘세상사 내가 스스로 지어 받는다’ 하여 자업자득(自業自得), 혹은 자작자수(自作自受)라 하고 이를 인과법칙(因果法則)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만사는 원인과 까닭이 없이 내게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7년 전 위암이 나를 방문한 것도 ‘내 탓’이요, 이제는 서서히 그 위암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도 그동안 건강관리에 힘써온 내 정성이라 생각하니 스스로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6년간 나는 식이요법과 운동, 특히 승마에 매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을 해왔다. 스스로를 살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살리는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수히 자문자답하면서 ‘나없는 세상 무슨 의미 있으랴?’라는 화두를 들고 스스로 제주에 나를 머물게 하였다. 그동안 말을 타면서 떨어지고 깨지고 피와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 한 번은 낙마를 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내가 어느새 말곁으로 가서 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하고 있었다. 그 괜찮다는 말은 어쩌면 내가 나한테 해주는 위로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주, 광주를 비롯하여 제주까지 승마장을 옮겨가며 만났던 애마 ‘지오(知悟)와 보배, 보리, 보림 등 나의 말(馬)동무들과의 인연들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나는 취미가 아니라 오직 살아남기 위해 승마를 해온 것이다.

내가 낙마를 자주 했던 것은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지 말들의 탓이 아니다. 빨리 달리고 싶고 장애물을 더 높이 뛰어넘고자 하는 욕구가 화(낙마)를 자초했다. 이제는 낙마에서도 두려움이 사라져 낙마(落馬)가 아닌 낙마(樂馬)로 변신하였으며 말과 함께하는 귀한 인연이 매우 소중한 순간들이 되었다.

요즘 나는 이런 기도를 하고 있다. “부처님이시여!~사바세계의 모든 재앙은 우리 인간들 스스로가 지어 받은 인과응보입니다. 부디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시고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함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인간들이 자연과 사람과의 모든 관계(인연)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깨달음을 주옵소서. 나무 관세음보살.” 어디선가 바람결에 ‘으흐흠~히히힝!~’ 말 울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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