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비와 불망비 등이 세워진 조천 비석거리 전경.

제주의 관문인 조천은 목사나 판관 등 관리들이 이곳을 거쳐 부임 또는 이임했다.

조천 비석거리는 1976년 제주도기념물 제31호로 지정받은 7기의 비석이 있다. 관리들에 대한 치적과 석별의 뜻이 담긴 비석들은 선정비(善政碑) 또는 불망비(不忘碑)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채동건 목사 선정비는 1855년부터 2년간 재임 중 백성들을 구휼했다. 그는 충청수사로 간 후에도 병사들의 급료를 기한 내에 지급하는 등 노고에 보답했다.

백희수 목사 선정비는 1851년부터 2년간 부임 했다. 그는 흉년이 들자 1000냥을 조정에 요구해 빈궁한 백성들을 구제했다.

정기원 목사 불망비는 1863년부터 1년간 부임하면서 임술민란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한 것을 기리고 있다. 그는 또 평역미(平役米)를 감면해 금전으로 대체해주는 조치를 내렸다.

1871년 을미양요 때는 진무사로 활약했으며 이후 총계사·어기대장·훈련대장 등 요직을 지냈다.

김수익 목사는 1649~1651년 제주목사를 역임하던 중 정의현감 안집의 모함으로 파직되면서 백성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이의식 목사는 1846~1848년까지 부임하는 동안 삼읍의 원전세(元田稅) 혁파, 군기 수리, 관사 중수 등 업적을 많이 남겼으나, 탐욕하고 포악해 백성들이 범과 같이 미워했다고 한다.

1857년 조천에서 태어난 김응우 판관은 1892년부터 1년간 재임하면서 청렴했고, 부지런히 정사를 돌봤다.

이원달 목사는 1837년부터 2년간 재임 중 평역미를 감면해주고 곡식이 기재된 장부를 샅샅이 조사해 민폐를 없앴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삼성혈(모흥혈)에 구멍이 있는지 막혀있는지 파보려 하다가 유생들의 읍소로 중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