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국회에서 생각한 한국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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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얼마 전 취재차 뉴질랜드 국회를 방문했다. 방청석에서 두어 시간 동안 이어지는 질의 답변 과정을 지켜보았다. 회의장은 1층에 있고 방청석은 오페라 극장의 발코니 좌석처럼 2층의 벽을 따라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질문하고 답변하는 의원과 장관들을 자연스럽게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회의장 풍경은 한국과 비교할 때 규모가 매우 작다는 느낌을 주었다. 의장석을 한 쪽 가운데 두고 여당과 야당이 마주 보고 앉게 되는 U자형 좌석 구조도 토론을 하기에 딱 좋게 만들어졌다. 의원 내각제이기 때문에 여당은 당연히 정부가 된다. 그러니까 정부와 야당이 필요할 때마다 마주 앉아 정책 토론을 벌이는 장소가 국회인 셈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의원들이 앉는 순서는 정해져 있다. 당 서열이 높은 순서대로 앞자리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여당에서는 총리가, 야당에서는 당 대표가 맨 앞 줄 중심에 앉고 그 다음은 당내 서열대로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좌석의 맨 앞줄은 프론트 벤치, 중간은 미드 벤치, 맨 뒤는 백 벤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프론트 벤치가 여야 모두 최선봉이 되는 구조다.

좌석 배치가 상징적인 의미만 갖는 건 아니다. 실제로 각각 당내 권력 서열 1위인 총리와 당 대표가 많은 문제에서 서로 맞붙는다. 자기 진영을 진두지휘하며 맨 앞에서 토론을 주도하는 것이다. 예전에 필자가 한국에서 국회를 출입할 때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좌석 배치도 여당과 야당이 마주 보게 돼 있지 않지만 당 대표 등 거물들은 대개 맨 뒤쪽에 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배석 배치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의 정당 지도부는 당 대표 연설 외에는 발언도 잘 하지 않는다. 뉴질랜드 정당 지도부가 대오의 맨 앞에 나서서 ‘나를 따르라’는 식이라면 한국은 맨 뒤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지휘 스타일인 셈이다.

한국에서 국회선진화법(국회법)이 만들어진 건 2012년이다.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벌어지던 몸싸움과 폭력을 막아보자는 게 도입 의도였다. 한국 국회는 대만 국회와 함께 과격한 몸싸움으로 해외 토픽 감으로 자주 오르내렸다. 의원들의 회의장 기습 점거을 비롯해 출입문 봉쇄, 의장석 쟁탈전, 공중부양, 최루탄 등은 한국 국회를 상징하는 시대적 용어들이었다.

다행히 이런 사태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국회법 도입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쟁점법안 처리가 한없이 지연되거나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국회의 생산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개정 작업이 추진되는 모양이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법을 지키는 데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할 의무가 있다.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법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한국 국회는 그런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고 반성도 부족했다. 여야 간 힘겨루기로 폭력 국회라는 오명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뉴질랜드 국회를 지켜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가벼운 언어폭력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답답하게 비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건 품위와 효율성이다. 뉴질랜드 국회는 의장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의사를 진행한다. 질의 답변 도중 의석이 소란스러워지면 ‘오더’ 한마디로 질서를 바로 잡을 수도 있고, 다른 의원에게 ‘거짓말쟁이’라고만 불러도 비방으로 간주해 회의장에서 퇴장을 명령할 수도 있다. 그게 법이고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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