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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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논설위원
1972년 4월 9일 제주시민회관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대의 인기 가수와 영화배우가 출연한 연예인 가요잔치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그 자리엔 나훈아, 최희준 등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가수들도 참석했다. 이날 출연자들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시민회관은 온통 감동과 환희의 도가니였다.

그랬다. 그 시절 시민회관은 제주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유일한 안식처였다. 마땅한 문화공간이 없었기에 국내 인기 가수들의 리사이틀은 으레 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영화는 물론 연극도 공연됐고, 음악회ㆍ연주회 등 각종 문화행사도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까지 시민회관은 ‘제주문화예술의 거점’이었다.

시민회관의 기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실내체육관의 부재로 배구, 농구, 탁구, 태권도, 복싱 등 다양한 운동경기도 펼쳐졌다. 그야말로 ‘제주체육의 요람’이었다. 때론 각종 집회와 기념식도 거행됐다. 경로잔치, 강연회, 민방위교육 등의 장소로도 활용됐다. 선거일 개표는 당연히 시민회관에서 진행됐다.

▲제주시 이도1동에 들어선 제주시민회관은 지금으로부터 52년 전인 1964년 6월 준공됐다. 부지 3027㎡, 공연장 1962㎡의 면적에 지상 3층으로 지어졌다. 공연장 2층은 고정석으로 505석 규모이며, 넓은 마룻바닥인 1층은 접이식 의자 400석을 놓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총 905석의 관람석을 보유하는 셈이 된다.

당시 돈으로 1646만원이 투입된 시민회관은 도내에선 보기 드문 모더니즘 양식이자 공공건축의 혁신을 주도한 건축물이었다. 벽돌을 쌓거나 변변찮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건물을 짓던 다른 공공건물과 달리 제주에선 최초로 철골 구조로 건축됐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아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 등록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제주시민과 동고동락했던 시민회관은 제주시 원도심의 상징적 공간이다. 그러나 한라체육관, 제주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등 현대식 체육관과 전문 공연장이 잇따라 세워지면서 활용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한때는 시설 노후화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보수ㆍ보강 공사를 통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새로운 변신이 요구되고 있는 대목이다. 때맞춰 제주발전연구원은 랜드마크 조성, 원도심 재생 사업 연계 행복주택 등 건립, 제주놀터 조성, 민간위탁 개발 등 네 가지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문화재 보존까지 추가하면 다섯 가지다. 과연 어느 게 최적의 대안일까. 결국은 제주시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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