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궤기 석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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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구/수필가

결혼이 많은 계절이라 신문 광고란에도 청첩이 가득하다. 주말에 거의 치르고 있으니 굳이 역술가를 찾아 택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토, 일요일이 길일로 바뀐 것이다.  제주의 결혼 문화도 60여 년 전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였다.


시골에서는 동네잔치를 나흘씩이나 벌였다. 그 시절에는 농한기에만 결혼식을 올렸다. 여자는 허벅으로 물을 길어오고 남자는 돼지를 잡고 삶는 일을 맡았다. 한 해 농사소득만으로는 힘에 부쳐 한 해에 두 번 올리지 않았다. 혼인 전에 신랑 쪽에서 신부의 집으로 정식 의례문서인 ‘막펜지’를 가지고 가면 혼인 날짜가 결정되었다.


결혼 잔치는 돼지를 잡으면서부터 시작된다. 돼지를 잡는 소리가 동네에 울려 퍼지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먼발치에서 구경하다 돼지 오줌보를 던져주면 재를 묻혀 공을 만들어 차고 놀았다. 이따금 고무신이 공보다 멀리 날아가 웃음보를 터트리기도 하였다. 돼지고기는 커다란 가마에 넣고 삶는데, 고기를 삶고 난 국물에는 모자반을 넣어 끓여 몸국을 만들었다.


둘째 날의 가문잔치는 양가가 혼례 준비를 하며 손님을 치르는 날이다. 하객들이 하루 종일 들락날락하다보니 결혼식 날보다 더 붐빈다. 이 날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도감(都監)이다. 혼주는 도감에게 고기를 내어주며 예상 손님수를 말하고 전권을 위임한다. 도감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져서 그의 허락 없이는 혼주라도 고기 한 점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왕조시대 궁중행사의 도감 풍습이 제주도 잔칫집에 남아있는 것이다.


타지방에서는 국수나 홍어가 잔칫상에 오른다면 제주에서는 돼지고기가 그 역할을 한다. 살림이 빠듯하다 보니 도감은 온갖 기량을 발휘하여 고기를 복어회처럼 얕게 썬다. 썬 고기는 그를 보좌하는 접도감이 부위 별로 석 점씩 놓고 그 위에 수애(순대)와 배설(내장) 한 점을 얹어서 내어준다.


술을 따르는 사람도 정하여 손님을 접대한다. 성심껏 모시나 한 잔 이상 드리지 않도록 교육을 시킨다. 하얀 사기잔에 넘치게 따르지만 애주가들에게는 입맛만 다시게 할  양이다. 올레에서 기다리며 술을 마시지 않는 손님과 합석하는 방안도 술을 더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통제를 하는 술도 해질녘이면 취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필요한 사람에게는 다 통하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결혼식이 있는 셋째 날은 전날 손님을 치른 탓에 대부분 친, 인척만 눈에 띈다. 붐비던 어제와는 달리 잔칫집이 한가롭기까지 하다. 신부 측은 예장을 받은 뒤, 혼주 대리인의 승낙이 있고나서야 신랑을 집으로 들여 대반이 잘 차린 신랑상으로 접대한다.


신행길에는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탔다. 그 후 화물 트럭이 말과 가마를 퇴역시키더니 승용차가 흔해지며 트럭도 본연이 업무로 돌아갔다. 장난기 많고 짓궂은 친구에게 힘으로 딸리면‘너 장게 갈 때 말(아래아) 똥구멍 쑤셔버리겠다.’라고 을러댔는데 그 말이 언제쯤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신랑 집에서는 신부가 신랑을 따라 오면 신부상을 마련하고 사돈 일행을 접대한다.


넷째 날은 결혼식이 끝난 다음날 사돈끼리 하는 두불 잔치로서 가까운 일가와 이웃사촌만 초대한다. 접(아래아)작뼈에 무를 넣은 국을 끓여 내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새 출발을 하는 부부가 잘 살기를 기원하며 나흘간의 잔치를 끝낸다.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가문 잔치가 피로연으로 바뀌었고, 결혼식 당일 식당에서 모든 잔치를 마무리하고 있다. 무릇 문화는 변하는 것이라지만 칠순이나 팔순 되신 어르신들이 접시를 들고 줄을 서있는 모습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우편으로 날아온 청첩장이나 신문에 실린 청첩을 보면서 갈등에 휘말릴 때도 많다. 참석 여부도 고민거리이고, 신사임당이나 세종대왕이 그려진 지폐를 몇 장 넣어야 하는가도 꼼꼼한 계산을 해야 한다.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이기적인 계산까지 덧붙여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결혼식장에서 왁자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신랑신부의 희망만큼이나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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