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輓 白凡 金九 先生(만백범김구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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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詩 蔣介石(작시 장개석)

樞星一夜落江山 추성일야락강산 큰 별이 한 밤중 강산에 떨어져/

天動地悲水自鳴 천동지비수자명 하늘도 감동 땅도 슬퍼 물마저 울어 댄다/

別淚溱溱滄海濶 별루진진창해활 이별의 눈물이 창해에 넘치고/

憤心疊疊泰山輕 분심첩첩태산경 분한 마음 첩첩이 쌓여 태산도 가볍소!/

堂堂義氣生前事 당당의기생전사 당당한 義氣는 생전의 일이었고/

烈烈精神死後名 열렬정신사후명 열렬한 그 정신은 사후에 남으리라/

千秋寃恨憑誰問 천추원한빙수문 천추에 맺힌 원한을 누구에게 물어볼까/

寂寞皇陵白日明 적막황릉백일명 적막한 그대의 무덤에 태양이 밝게 비추오./

 

▲주요 어휘 △輓=애도할 만 △樞星=북두칠성의 첫 별 △溱溱=많은 모양 △疊=겹쳐질 첩 △皇陵=천자의 능

▲배경=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은 해방된 이듬해 제주도에 들어와 제주농업학교에 들려 남이(南怡) 장군의 시 ‘백두산석마도진 두만강수음마무(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란 문구를 썼다.

 

이는 일제 말기 장개석 총통과 비밀협약을 통해 광복군을 남쪽 제주도로, 또 북쪽 압록강으로 기습 상륙하여 일본군을 무찔러 전후 연합군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승리의 발언권을 얻으려 했으나, 원폭 투하로 백범 생각보다 먼저 일본이 항복한 것이다.

 

한편 일제 말기 김구의 지시로 백범의 경호실장 문덕홍(文德洪·한림면 옹포)은 중경(重慶)에서 부산에 몰래 숨어 들어가 비밀폭파 임무 수행 전에 피체被逮되어 모진 고문을 받던 중 일본이 항복하였다. 당시 백범과 문덕홍이 ‘문덕홍임별文德洪臨別’이란 기념사진을 남겼으며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조천리의 항일독림기념관 개관식에 윤경빈尹慶彬 광복회 중앙회장이 나와 점심을 들면서 “당시 사진 찍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소. 제주인으로서 정말 윤봉길·이봉창 의사와 같은 애국반열에 오를 의사가 될 뻔 했지요.”

 

백범은 해방 후 제주를 처음 찾은 민족지도자이다. <해설 남헌 김찬흡 선생>

 

△1949년 안두희(安斗熙)에게 암살되자 제주에 오셨던 일을 회상하며 제주유림 홍순재洪淳宰(홍정표 부친), 김경종(金璟鐘·노형동)등은 제문(祭文)을 지어 분향(焚香)하였다. 특히 홍순재는 일주기(一週忌)까지 두건(頭巾)을 써서 초하루 보름마다 머리를 조아렸다.

 

윤경빈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사둔지간이며 현재 생존해서 광복절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을 TV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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