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의 정치공학을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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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략연구실장/논설위원

벌써 2년도 넘은 얘기다. 2014년 6월, 국방연구원이 당시 연합사령관을 초청한 포럼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처음 거론됐다. 그 이후 언론에서는 사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다양한 추측과 평가가 난무했다. 사드를 주제로 한 소설도 히트를 쳤다. 틀린 정보가 많았지만 말이다.

시사에 밝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미 탄도미사일방어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라는 것은 정파적 프레임에 의해 조정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파적 신념을 강화시키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채 받아본 신문의 헤드라인에 따라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느 정도 고정된다. 스마트 폰으로 보는 포털의 뉴스도, SNS도 마찬가지다. 어떤 매체는 사드 배치를 뒷받침하는 정보를 더 많이 싣고, 다른 매체는 사드 배치의 부당성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전면에 배치한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고 다양한 매체가 있다는 것이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이 지지하는 정파적 프레임은 다른 생각과 주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신문은 구독하지 않으며, 그런 방송은 보지 않으며, 그런 SNS 친구는 팔로우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신념이 견고해지며 대화는 단절된다.

이쯤해서 독자들은 필자가 사드와 관련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필자는 사드배치에 찬성한다. 필자는 사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이 매우 불편하다.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분들이 사드 반대 논리를 강력하게 펼치는 상황은 당황스럽다. 지금 이 시점에서 사드를 반대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적으로 볼 때 동북아의 전략상황이 요동칠 때마다 우리의 정치상황도 맞추어 춤을 췄다. 100여 년 전의 상황만 돌아봐도 그렇다. 고매한 이상을 품은 엘리트들이 주변 강대국의 세력판도와 연계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의 정치적 파당에 따라 모험을 감행했다. 성공한 이들은 득세했고, 실패한 이들은 숙청되었다.

일부에서는 사드 찬성, 사드 반대에 따라 이름을 적어 놓자는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나중에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결적인 사고패턴은 필연적으로 정치과잉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파당에 따라 형성된 선택지에서 어디에 동참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도 좌우될 지경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긴 뭐 새로울 것도 없다. 우리 사회는 대결이 일상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운전을 해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옆 차선으로 가려고 깜빡이를 켜면 그 차선 뒤에 있던 차가 안 끼워 주려고 외려 속력을 더 내서 바짝 붙인다. 우리 사전에 양보는 없다.

대부분의 차가 썬팅을 짙게 해서 차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 그래서인지 더 맘 놓고 들이대고, 빵빵거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앞길에 끼어든 차에 대해서는 응징을 가한다. 바로 차선을 바꿔 자신 앞에 끼어들었던 차를 지나쳐 그 앞으로 다시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사드 논란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상대 진영이 가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깜빡이를 켜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대는 것이 차선을 바꾸는데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도 할 만 하다.

철없는 운전자들이 도로에서 벌이는 그 악다구니의 결과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승리감에 도취되는 시간은 찰나적이다. 구한말 엘리트들이 벌인 정치적 모험과 정쟁의 결과는 식민지배였다. 북한 핵을 앞에 두고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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