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의 무리들은 왜 족수(足數)가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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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행정지원실장/논설위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선(善)과 악(惡)의 대결구조, 불의(不義)와 정의(正義)의 이원구조를 판에 박힌 듯 전제하는 상황을 흔히 본다. 물론 허구이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흔히 접하는 상황은 이렇다. 주인공은 정의의 편에서 선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 이에 맞선 악의 무리들은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갖은 수를 동원하여 모함과 함정을 판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은 이런 함정에 빠져들고 모함의 대상이 되어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이를 꿋꿋이 헤쳐나가며 악의 무리와 당당하게 맞서나간다. 우리는 그런 주인공의 활약상에 동정하면서도 동질의 영웅심을 함께하며 악의 무리를 소탕함에 환호한다. 결론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여기서 필자는 종종 의구심을 갖곤 한다. 왜 주인공편에 있는 인물보다 악의 우두머리를 위시한 간교하고 사악한 악의 무리들이 훨씬 많은가. 싸움씬에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일대다(一對多) 소위 다구리로 악의 무리가 판을 치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악의 무리는 죽여도, 죽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악의 포로가 되면서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항상 예정된 대로 그 절망의 한계를 극복하며 신적으로 부활하고 악의 무리를 소탕함에 전력하게 된다. 이제 우리의 주인공도 싸움의 고수나 람보처럼 절대 죽지 않고 악의 무리를 처단해 나간다.

여기서 또 의아함이 있다. 항상 결론은 비슷한데, 주인공의 역경이 많을수록 이를 보는 우리들은 더 많은 희열과 감탄을 느끼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 세상은 악의 무리가 훨씬 많은 것인가?

문제가 어려우니 우선 하나씩 전제를 해보면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악의 무리가 훨씬 많다고 전제하자. 왜? 그래야 영화가 되니까. 그래야 주인공이 빛이 나니까. 소위 영웅주의를 일으켜야 일반 서민의 통쾌함을 대변할 수 있으니까. 역시 이에 대한 답도 쉽지는 않다.

두 번째 선의 무리가 적다고 전제해 보자. 대부분 영화에서 (그러니까 내 주위를 보아도) 그런 것 같으니까. 이것도 쉬이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가 있다. 악의 무리가 족수(足數)가 많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를 하더라는 것이다. 악의 무리는 항상 족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악의 축에 누가 있고, 어떠한 사람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악의 무리의 족수가 많은 것은 악의 본질을 희석하고 선의 세력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다. 혼동을 유발하여 이로 인해 혼란을 야기하고 대응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일 수도 있다.

가치관 혼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절대악(絶對惡)도 절대선(絶對善)도 모호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의 무리보다, 선하고 정의로 정의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임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악의 무리를 시원하게 소탕해 줄 우리의 영원한 주인공을 갈망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홍길동이나 슈퍼맨이 아니더라도 영화에서처럼, 때론 묵묵히 드러나지 않게, 악의 무리를 상대하는 진정한 영웅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지금이 난세라면 될성부른 영웅이 나타날 법하다. 푹푹찌는 무더위를 식혀줄 그런 영웅말이다. 판에 박힌 영화나 드라마보다 선악대결의 가치판단과 정의 지향의 시나리오가 더 많아지는 세상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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