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聞 自由解放(문 자유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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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詩 文庵 姜熙慶(작시 문암 강희경)

乙酉之年乙酉月 을유지년을유월 을유년(1945년) 을유월(8월)에/

忽聞志士建朝鮮 홀문지사건조선 문득 지사(志士)에게 들은바 조선이 건국된다고/

檀箕日月囬生色 단기일월회생색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이 새롭게 빛이 나고/

麗李江山相繼傳 려이강산상계전 고려와 조선의 강산은 서로 이어 전하게 되었네/

今古忠賢名萬世 금고충현명만세 고금에 충신과 현인들의 이름 만세에 떨치고/

莊重節義續千年 장중절의속천년 장엄하고 중후한 절의는 천년을 이어갈 것이나/

然而又入西洋手 연이우입서양수 또한 서양의 촉수가 들어오나니/

有志紳人仰聖天 유지신인앙성천 뜻있는 신사들은 성왕의 나라가 열릴 것을 바라네/

 

▲주요 어휘

△忽=문득 홀 △繼=이을 계 △續=이을 속 △忠賢=충신과 현인

△紳人=지식을 두루 갖춘 신사 △仰聖天=성스러운 세상 즉 평화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바람

 

▲해석=저자인 강희경(姜熙慶) 先生은 1874년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강승우(姜承遇)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이 여유롭지 못하여 아버지에게 천자문(千字文), 동몽필습(童蒙必習) 등 초보적인 한문을 익혔을 뿐, 오로지 독학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 등을 섭렵(涉獵)하며 한학에 열중하였다.

 

구한말 사회 격변과 일제치하에 관직에는 뜻을 접고, 유림이나 향교에 출입하며 농사일과 후학교육에 전념하던 중 일본이 패망하며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을 때 위와 같이 작시(作詩) 하였다.

 

시(詩)의 전반적인 내용으로 볼 때, 국권회복을 얼마나 갈구하였으며 애국지사의 공훈을 오래 기억하고 서구(西歐)의 속풍(俗風)을 경계하였다.

 

선생의 주요 경력은 제주향교 도강사(都講師), 유림반수(儒林班首) 등을 역임하였고, 저서로는 간략한 유수암지(流水巖誌) 등 약간의 유고(遺稿)가 전해지며 1959년 유수암에서 돌아가셨다.<해설 지산 이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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