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의 눈에 비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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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학 제주대학교 교수 지리교육 전공/논설위원

최근 제주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에 등재됨으로써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서양 사회에도 제주가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 주변에서도 서양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언제부터 제주를 인식하게 되었을까? 서양인들의 제주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해갔을까? 이러한 물음은 타자의 제주 인식과 관련된 것이지만 제주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서양에서 제주의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6세기 이후이다. 이 시기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인식되고 지도에도 제주가 한반도의 끝 부분에 그려진다. 그런데 이 시기 제작된 몇몇 지도에는 남해안과 제주도에 해당하는 곳에 포르투갈어로 ‘도적섬(Ilhas dos Ladrones)’이라 표기되어 있다. 제주인이 듣기에는 다소 불편한 이름이다.

원래 ‘도적섬’이라는 명칭은 마젤란이 1521년 필리핀 동쪽 해상에 있는 지금의 마리아나 제도를 발견하고 붙인 이름이다. 이후 1668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당시 스페인의 섭정자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를 추모하여 ‘마리아나 제도(Las Marianas)’로 개명했다.

그렇다면 마리아나 제도에 붙여졌던 ‘도적섬’이 어찌하여 제주도 인근에 있을까? 아마도 당시 이 지역을 항해했던 포루투갈 상인들이 제주도를 포함한 남해안, 대마도 일대 해상에서 출몰하는 해적 이야기를 듣고 이를 경계하고자 이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제주는 ‘풍마도(I. Fungma, Fongma)’로 표기된다. ‘풍마도’에 대한 기존의 학설은 조선 최대의 목마장 지역임을 고려하여 말이 많다는 의미의 ‘풍마도(豊馬島)’로 해석하기도 하고, 바람과 말이 많은 제주의 풍토와 관련하여 ‘풍마도(風馬島)’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모두 역사적 증거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서양인이 명명한 ‘풍마도’는 당시 지식 정보의 네트워크를 고려한다면 중국 지도의 지명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7세기의 일부 지도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단서가 보인다.

1602년의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에는 쓰시마섬이 ‘대마(對馬)’라는 명칭으로 남해안에 제주도보다 크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부 지도에는 이 섬이 ‘봉마(鳳馬)’라고도 표기된다. 아마도 ‘대마(對馬)’를 ‘봉마(封馬)’로 오인하고 비슷한 음가인 ‘봉마(鳳馬)’로 표기한 것인데, 서양의 선교사가 이를 보고 대마도가 아닌 제주도에 ‘풍마도(I. Fungma)’라 이름 붙인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러는 ‘풍마도’와 더불어 ‘켈파트(Quelpart)’가 등장한다. ‘켈파트’라는 명칭은 발음이 유사한 ‘가파도’에서 유래했다거나 감탄사 ‘Quel Part(아니 이런 곳이)!’에서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지만 ‘켈파트’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제작했던 항해용 범선을 일컫는 말이다. 1642년경 이 선박은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제주도를 발견하고 배의 이름을 따서 ‘켈파트’라 명명한 것이다. 이후 제주에 표착했던 하멜이 자신의 보고서에 제주를 ‘켈파트’라 표기했고, 책으로 간행되면서 제주가 ‘켈파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켈파트’는 제주의 대표적인 지명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지금의 ‘제주도(I. Cheju)’는 20세기 이후에야 나타난다. 고려 고종 연간에 ‘제주’라는 명칭이 등장한 후 무려 700여 년이 지난 다음이다.

멀리 떨어진 극동의 섬 제주를 제대로 인식하기까지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대가 정보화 사회라 하지만 아직도 일부 서양인들은 과거의 인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제주의 모습을 알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진정한 교류는 진정한 인식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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