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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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전 중등교장/시인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더니 기세가 한풀 꺾인다. 한밤중 잠결에 덮을 것을 찾게 되니 자연은 묵묵히 제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토지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건축 터를 파헤치는 중장비의 굉음이 끊이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염려한다. 투기세력의 개입으로 솟아오르는 집값이나 땅값은 서민들의 절망을 키울 뿐이다.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는데도 제주로 유입되는 인구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는가? 가장 큰 요인은 청정한 자연 풍광에 매료되는 것일 성싶다. 눈을 들면 늠름한 한라산과 그 자락에 봉긋봉긋 솟아오른 오름들, 다시 눈을 돌리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글자 그대로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여건이 닿기만 하면 누군들 살고 싶은 곳이 아니랴.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중산간 곳곳에까지 건물들이 들어서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서 또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시멘트로 상징되는 문명은 우리의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 자연이 훼손됨에 따라 우리의 마음도 황폐화되기 십상이다.

일전에 읽은 기사에 아연실색했다. 지난해 제주지역의 4대 강력범죄 즉 살인, 강도, 절도, 폭력 발생률이 전국에서 제일 높게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하여 삼무라 했고, 우리 선조들이 수눌음을 통해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오순도순 정을 나눠 온 곳이 아닌가.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관광객을 포함한 유동인구의 급증도 한몫 했을 테다.

삶이 팍팍하다 보니 마음이 메말라지거나 아니면 무엇이든 비교우위에 서려는 탐욕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의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이 있어야 한다.

앞마당에는 배롱나무의 붉은 색과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내게 삶에 충실하라고 눈짓한다. 무엇이 불만이냐고 반문도 한다. 자연은 인간을 포용하며 순화시킨다. 자연과 소통할 때 마음은 여유롭고 풍요로워진다.

제주시 도남동 시민복지타운 시청사 부지에 공공임대주택 1200세대가 들어설 계획이라 한다. 과연 이것이 도심의 금싸라기 땅을 이용하는 최선의 방책일까?

차라리 문화예술 시설을 포함한 자연공원으로 개발하라면 경제를 너무 모른다고 비난 받을지도 모르겠다. 지갑의 두께에 비례하여 행복해지거나 보람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연의 숨소리를 느끼고 우주의 침묵에 귀 기울일 때 가능해진다. 소나무도 심고 꽃도 심으면서 마음밭을 가꿀 때 우리의 사유는 넓고 깊어진다. 아울러 이웃을 헤아리며 영혼을 살찌울 수 있다.

어느 성공회 주교 묘비명의 일부를 되뇐다. 그는 젊어서 세상을, 나이들면서 나라를 변화시키려다 불가능을 깨닫고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는지.”

내가 먼저 마음을 푸르게 가꾸는 게 쉬운 일이요,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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