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드와 중국 굴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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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략연구실장/논설위원

8년 만이었다. 36도 가까운 폭염에 시달리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미국 서부의 날씨를 접하니 좋은 것이 지나쳐 감기에 걸렸다. 8년 만의 미국 출장은 고생길이 되고 말았다.

그런 출장 일정의 마지막을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시작했다. 그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랜드 연구소에서 약속이 있는 날인데 좀 일찍 도착해서 본의 아니게 해변을 즐기게 되었다.

한반도 위기 시나리오에 관해 논의하기로 되어있었다. 미국의 대한반도 안보공약에 대해 물을 작정이었다. 향후 미-중 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들이라고 뭐 속 시원하게 답을 할 수 있을까마는.

당연히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관련해서도 논의했다. 사드 배치는 진작 했었어야 한다는 미측 연구자들의 입장을 들으며 중국의 보복 때문에 사드 배치는 철회되어야 한다는 국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모든 논쟁의 출발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입장 차이로 귀결되는 듯했다. 중국의 부상이 지속될 것인가? 그게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미-중 간의 견제 게임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생존과 이익을 모색할 것인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다른 사람의 말과 글에서 내 생각과 같은 부분만 추려서 듣고 보게 된다. 며칠 동안 여러 연구자를 만나봤지만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공고히 하는 것만 들었던 것 같다. 필자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이렇다.

미국은 2~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미국의 국가전략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판’이 읽힌다. 미국의 국가이익은 자신이 위치한 서반구에서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역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전 지구적 패권은 역사상 어느 나라도 달성한 일이 없기 때문에 미국은 서반구 이외의 지역에서 지역 패권국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난 100 여 년간 독일, 일본, 소련의 도전을 차례로 제지했다. 최근에는 골치 아팠던 테러와의 전쟁을 마무리했고 숨을 돌렸다. 이제 중국을 겨냥할 준비가 된 것이다.

사드 반대론자들은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가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휘말리면 안 된다고 한다. 사드가 그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비약에 찬성할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중국이 견제되지 않고 동아시아 패권국가가 되는 것이 우리의 국가 이익에 부합할까?

패권국가 이웃 나라의 삶은 고달픈 것이다.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미국은 너무 가까이 있다’ 멕시코인들은 이렇게 푸념한다고 한다. 중국의 굴기(堀起)가 지속되어 동아시아의 패권국이 된다면 우리는 그 때 이렇게 얘기 할지 모른다.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중국은 너무 가까이 있다’고.

미국에 비판적인 것이 지성인의 표상처럼 되는 요새 시류를 감안할 때, 필자의 이런 주장에 반감을 가질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도 미국 유학시절에는 미국 사회에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었다. 멀리 있는 미국이 좋은 것이지 미국이 가까이 있었다면 지금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필자의 시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폭주와 오만, 무례가 도를 넘고 있다. 지금도 이럴진대 중국이 역내 패권을 장악했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중국의 부상은 기후변화와 같아서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실로 그러한 미래가 두려울 뿐이다.

여전히 산타모니카 해변은 여유로 왔다. 이 바다 저쪽 끝에 있는 격동의 동북아를 생각하면 그곳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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