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백서(기록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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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기록이냐, 기억이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쟁점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노무현 정부가 기권하게 된 상황을 다룬 것으로 전체 559쪽 가운데 8쪽 분량이다. 분량만으로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하지만 수면 밑의 거대한 덩어리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그것이 타이태닉호를 침몰시킨 빙산만큼 파괴력이 있을지는, 아니면 쇄빙선에 의해 산산조각이 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여ㆍ야 정치권의 팽팽한 싸움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것은 기록과 기억의 차이다. 기록(記錄)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글이나 기호로 적는 것’이다. 기억(記憶)은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이다. 이 모두는 ‘훗날’과 ‘보존’에는 의기투합한다. 차이는 훗날 각자도생을 위해 보존 장소를 ‘어디’를 택하느냐다. 하나는 문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머릿속이다.

기록은 생물이라 때로 불멸의 삶을 살면서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억은 장기기억장치에 들어가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훗날 출력량은 애초 입력량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에 비유하면, 기록은 예술이고, 기억은 인생이다.

▲기록물을 통칭하는 말로 ‘백서(白書)’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국정의 내용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문서 혹은 각종 사항을 발표하는 공식보고서를 지칭한다. 영국 정부가 외교정책의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의 표지가 ‘흰색’이었던 데서 이 명칭이 유래됐다.

현대 들어서는 국방백서, 경제백서, 외교백서, 노동백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만큼 백서는 각 분야의 기록이다. 백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료적 가치가 있어 역사의 기록으로 굳혀질 수 있다. 그래서 백서 작성은 출발 단계가 중요하다. 첫 단추를 누가, 어떻게 꿰느냐가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바느질을 하면 할수록 옷맵시는 헝클어지고 볼품 없게 되기에 십상이다.

제주민군복합항(제주해군기지) 백서 발간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구상금 소송과 사면복권 문제 등 풀어야 할 일이 산적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후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지금은 시기상조다.

▲기록은 기록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차후에 어떤 사실을 확인해주기도 하고, 시간이 덧칠하면 거짓이 진실로 둔갑해 정당성을 지닐 수도 있다. 그것은 권력의 터전이 되기도 하고, 권력을 뒤집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빙하는 움직이고, 기억은 가물가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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