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용렬한 보복,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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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준 한국문인협회 이사 작가/논설위원

2015년 중앙의 모 기관에서 문화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하고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거쳐 지원 대상자를 선정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발표를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했다. 발표 못한 이유가 선정된 자 중 일부가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그들을 교체하여 다시 심사하라는 상부 지시가 내려 왔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이 재심사를 거부하면서 시간만 흘렀다. 심사에 참여한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런 잡음은 연극과 영화 등 다른 기관의 공모 심사에서도 가끔 들려왔다.

최근 소문으로만 나돌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국정감사에서 증언과 문서로 드러났다. 명단 중에 제주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이름도 다수 보인다.

이런 것을 누가 왜 만들까? 그것은 권력의 속성과 연결되어 있다. 권력은 자리와 예산을 분배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그리고 상부에서 내린 지침대로 자리와 예산을 분배하는 일을 맡은 자가 공직자 혹은 산하 조직의 수장이다. 법인이건 기관단체 건 최종 결재자나 권력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게 조직의 생리다. 그래서 후보시절 낙하산 인사에 대해 전임자를 비방하던 대통령도 당선이 되자 자기 사람을 챙기면서 비난 따위는 귀 막아 버린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낙하산들은 힘 자랑 하듯 예산 지원이나 조직 인사에서 그들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을 배제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공직 사회만 있는 게 아니다. 말 한마디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을 예고도 없이 방송에서 하차시키는가 하면, 정치 풍자 연극을했다는 이유로 공연장 대관조차 막아버린다. 노조운동을 하다 쫓겨난 사람은 어느 직장에서도 취업이 힘들고, 심지어 성형외과 블랙리스트까지 등장하여 한번 잘못 찍히면 살아남기 힘들다. 가히 블랙리스트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공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분류 유형을 보면 그 의도가 분명해 진다. 문재인·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 문화예술인, 세월호 진실규명 시국선언 문학인, 세월호 정부시행령 폐기촉구선언 문화예술인 등 2012년 정권 탄생 전부터 2015년 5월까지 9473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문화예술인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처사다.

블랙리스트는 결국 살아있는 권력에 비판적인 자들에 대한 용렬한 보복 대상 목록이다. 그 리스트는 카르텔(cartel·기업연합)이 형성된 조직 내에서 은밀하게 교류 또는 통보되고 국민 혈세를 지원 받으려는 자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정치 검열대가 되었다.

블랙리스트는 통제를 위한 권력 남용의 산물이다. 이것은 동종 업종의 조직원들을 편 가르고 줄을 서게 만들므로 정부가 그토록 부르짖는 국민통합이 구두선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정부 지원이 없어도 활동이 가능한 문화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무시하지만 다수의 문화예술인, 특히 거액의 지원금이 필요한 공연예술가의 경우는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경우에 원칙과 기준과 잣대는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각종 공모 작품을 심사하는 사람은 시혜자의 태도가 아니라 객관적인 평가자의 눈을 가져야 한다. 이념이나 정치 검열로 입맛에 맞는 사람만 지원 한다면 예술은 기형적으로 퇴보할 것이며 문화융성이라는 국가지표도 뜬구름이 될 것이다.

문화예술인을 무시하고 배제시키는 정권이 성공한 적은 없다. 문화예술은 시대정신과 정치현실을 담는 그릇이고 권력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임기 끝나면 전임자에 대한 손가락질만 남는 게 요즘 세태다.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는 것은 탐욕이며 죄악이다. 공명정대하게 국민을 섬겨야 하는 것이 공복의 의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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