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이 벙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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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마른하늘에 생벼락이라더니, 웬 끔찍한 일인가. 근본 없는 한 여인이 나라를 들쑤셔 쑥대밭을 만들었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나는 아잇적에 초근목피를 먹으며 짚신도 신어 봤고, ‘곤밥’ 한번 먹어 봤으면 하고 침 흘리며 자랐다. 가난을 뼈가 저리게 겪은 세대로, 솔직히 실토하거니와 박정희 향수를 털어내지 못해 온 사람이다. 지금 호의호식하는 게 다 그분 덕임이 여실하다 여긴다.

산업화로 ‘잘 살게’ 되면서 나라가 조금씩 풍요해졌다. 토양이 비옥하면 민주주의가 온전히 뿌리 내리는 줄로 알았다.

박정희 시대로 시작해 이어진 얼음판 군사독재를 견뎌낸 뒤, 민주항쟁의 눈부신 기억을 우리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아, 이 땅에도 봄이 오는구나!’ 민주주의가 기틀을 잡는 걸 느끼며 이명박, 박근혜에서 좀 후퇴하는 듯했지만 기본은 잡히리라 기대를 모았던 게 사실이다.

한데 그건 환상이었다. 어간 말도 많았다. 기득권 세력의 건재로 켜켜이 쌓여 온 온갖 병폐들.

외려 힘을 실어 준 재벌 개혁이며, 언론 개혁이 구두선에 그쳤다. 거기에 사법·행정 개혁이란 이름뿐인 공허한 메아리….

대통령의 연설문에 손댄 건 얼굴에 난 뾰루지에 불과하다. 수렴청정, 엉뚱한 비선 실세가 발 뒤에 한자리 틀고 있었다니. 국민 고혈(膏血)로 짜낸 예산을 주물럭거리고, 나라를 재단하는 중요 인사에 촉수를 들이댔다.

국가 중요 정책 결정에까지 개입하고, 권력과 이익을 독식 독점해 가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대통령이 주술(呪術) 같은 영적 중독에 빠졌다니, 철학이 없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한낱 사교(邪敎)에 현혹됐다면 소도 웃을 일이다.

사태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고, 한 여인이 만인지상으로 국민 위에 군림했다. 시대의 격랑에 쓸려 부모 잃는 불행을 겪었다며 심정적으로 연민해 온 우리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을 품어 준 선량한 백성들을 저버렸다.

지난 주말, 민심이 성난 파도로 일어섰다. 제주에서도 ‘박근혜 하야, 최순실 구속’을 외쳤다.

이는 시작일 뿐, 눌러 참았던 국민의 저항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갈 데까지 가려 할지 모른다.

빨리 수습해야 한다.

대통령은 번쩍 깨어나 머리 위에 국민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정치권에선 여야 불문, 난국을 돌파하는 데 초당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혹여 여차하게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이 깔린다면 그것은 사이비다.

대통령이 참모진을 개편하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지명으로 고심하는 모습이나 나라가 살얼음을 딛고 선 형국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짚지 않으면 나라의 밑동이 흔들린다. 냉혹 엄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립총리·거국내각이 이뤄질 양이면, 시스템에 의한 진상 규명이 조속 이뤄져야 하리라.

변방에서 하늘을 우러른다. 개탄스럽다. 교언영색(巧言令色)만 있고, 이 나라엔 왜 직언(直言)이 없는가.

지난 주말 광화문 시위에서 일부 시민들이 경찰관의 방패를 빼앗자, 그걸 머리 위로 파도타기 하듯 넘겨 돌려줬다.

또 의경을 때리자 ‘때리지 맙시다’고 외쳐댔다 한다. 울컥했다. 들끓는 분노 속에서도 민중은 성숙하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이 고통을 왜 주인이 짊어져야 하는지, 우리 모두의 통렬한 반성이 따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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