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의 새 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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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전 중등교장/시인

길은 자유로이 오가며 여러 곳으로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나 자동차가 통행을 제한 받는다면 흐름은 느려지고 결국 정체 속에 그 기능을 상실한다.

나의 집은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볼 일이 생겨 시내로 향하거나 귀가할 때면 샛길을 자주 이용한다. 대로보다 1800m쯤 가깝기 때문이다. 시간과 휘발유 값이 절약되는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여 늘 긴장하며 운전해야 하고, 어쩌다 자동차와 마주치면 군데군데 좀 넓은 곳으로 누군가는 양보해야 흐름이 트인다.

나는 시력 관계로 세밀하게 운전을 못하는 편이다. 샛길의 커브에서 마주친 자동차에게 자리를 내주려고 너무 오른쪽으로 운전대를 돌린 탓에 강판으로 둘러싸인 울타리에 문짝을 깊이 긁힌 적이 있다. 조심해야지 마음을 다졌는데도 얼마 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형태로 차체 손상을 입어 보험할증을 받았으니 누구를 탓할 것인가. 그 이후로는 자동차를 마주하면 나는 차를 세우고 상대방이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어제 저녁 아내를 태우고 시내를 향해 경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한 자동차의 뒤를 따라 익숙한 샛길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커다란 냉동 특장차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앞 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교차해서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오른 쪽에는 공간이 좀 있어서 나는 그쪽으로 차를 세우고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사이에 양쪽으로는 차들이 꼬리를 물어 진퇴양난이었다.

나는 차창을 열고 대형차 운전자에게 이 좁은 길을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외치려다 그만 두었다. 누구에게나 다닐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내가 이 샛길을 이용하듯 그도 같은 마음으로 이용하는 것일진대. 시간을 끌며 우리 쪽 차들이 후진하여 흐름이 되살아났다.

대형차는 대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으련만 주인은 샛길을 택했다. 덩치가 크니 응당 작은 차가 자리를 비키라는 무언의 협박이 아닌가. 자동차는 주인이 하자는 대로 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익을 추구하느라 마음의 길이 막혔으니 소통이 될 수 없고 배려가 있을 수 없다.

요즘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소리가 들불 같다. 국민의 가슴 속에 스며있던 경악과 분노와 허탈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많은 국민이 개나 돼지가 되어야 하고, 부모가 가난해서 조롱감이 되어야 한다면 이게 숨 쉴 수 있는 나라인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쳐대던 대통령이 정상의 비정상화를 보여 줬으니 이보다 더한 패러디가 있을까. 이렇게 분별력이 없고 편협 된 마음인 줄 모르고 짝사랑했던 내 마음의 허탈감을 무엇으로 달래야 한단 말인가.

돌팔매질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모두가 냉철히 국가와 사회의 병리를 되짚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노니 먼저 잘못을 저지른 공인은 국민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을 벗어나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자동차가 문제가 아니라 관리하고 운전하는 사람이 문제이듯 국가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했으니, 절차에 따라 올곧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 침몰하는 우리나라를 구해내길 기원한다. 공평과 정의의 길을 누구나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살맛나는 나라, 오늘 밤 꿈에서라도 그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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