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기영 작가가 자택에 있는 서재에서 오랫동안 금기 시 됐던 4·3사건을 문학작품으로 세상에 처음 알린 ‘순이 삼촌’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 속에서 국민이 태어납니다. 국가는 어머니입니다. 국가와 정권은 같다고 혼동해선 안 됩니다.”

감춰진 현대사와 민족의 고난을 어루만져 왔던 소설가 현기영(75)은 우리 시대 멘토(스승)로 꼽힌다.

현 작가는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정권은 누가 선택했느냐. 수준이 떨어지는 정권을 선택한 국민도 반성해야한다”며 일갈한 후 “단, 국가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좋은 정권과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항상 긴장을 하고, 정권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족의 수난기에 처한 역사를 치밀하게 그려냈다. 4·3사건을 다룬 ‘순이 삼촌’은 유신 체제와 독재 시대에 대한 도전이었다.

금기를 깨뜨린 그는 모질게 고문을 당했고, 책은 7년간 금서(禁書)가 됐다. 그러나 펜대를 꺾지 않았다.

68년 전 4·3과 작금의 국정 마비에 대해 현 작가는 응어리를 토해냈다.

“국가는 제주도민을 보호하고 구원해줘야 했지만 4·3때는 이를 외면했죠. 무고한 양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국가는 방관을 한 거죠. 국가의 거대한 부재나 다름없었죠. 이런 국가는 독재 정권이 만들어 낸 산물이죠. 요즘 시국을 보면서 국가는 부정하지 말되 보다 나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일곱 살 때 4·3을 경험한 그는 서른다섯 늦깎이로 문단에 등단했다. 4·3에 대한 집필은 그의 숙명이었다.

“고향은 불탔고, 친척들은 수구수군 거렸죠. ‘영춘이 각시가 끌려가서 죽었다’는 등등…분노의 목소리가 아니라 중얼중얼 넋두리만 늘어놨죠.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이미 알았고,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으면서 어린 시절 말더듬이가 됐죠.”

그는 내면의 억압 때문에 생겨난 말더듬이를 극복해야 했다. 금기를 깨뜨리고 응어리를 발산해야 했다.

“문학과 예술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죠. 억압할 대상이 아닙니다. 문학가는 속박되는 것을 제일 싫어하죠. 독재 정권이 민중을 지배하면서 가슴이 답답했죠. 공기마저 탁해서 억압된 것을 타파해야겠다는 마음만 쌓여갔죠.”

그는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1970년대 그 누구도 발설하거나 공표해선 안 될 4·3을 발산했다. 침묵의 법칙을 깨뜨린 대가는 혹독했다. 인간으로서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 고문과 매질을 당했다.

“젊으니까 ‘순이 삼촌’을 썼지만 사실 마음은 졸여야 했죠. 진실을 밝히려했던 용기는 억울하게 죽은 4·3 영령들이 이끌어 준 것 같아요.”

1978년 발표한 ‘순이 삼촌’은 4·3진상규명을 전국에 촉발시킨 도화선이 됐다. 도민들이 잃어 버렸던 기억도 복구시켜 놓았다.

그는 작가로 등단하면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서구문학을 베껴왔던 모범 글쓰기가 아닌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문단에 데뷔했다고 했다.

“그동안 4·3에 대해 중·단편만 써왔기 때문에 많은 얘기를 하지 못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2권 분량의 장편을 쓰고 있습니다. 실체적 진실에 더 접근해야 합니다.”

작가는 늙었지만 4·3의 기억은 놓지 않고 있다. 도민들이 겪은 비극과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장편서사를 집필하며 투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