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하면 ‘별’을 달았다고 한다.


그만큼 경찰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역세가 전국의 1% 밖에 안 되는 제주에서 태어나 경찰의 별을 세 개씩(치안정감)이나 달고 대한민국 수도의 치안을 책임졌다는 것은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열정, 그리고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경찰 총수 자리를 눈앞에 두고 주변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경찰에서 물러났지만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제2의 인생을 펼쳤던 이근표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바로 그다.


요즘 그는 극동대학교 석좌교수로 경찰을 꿈꾸는 후학들을 위해 그의 소중한 경험과 철학을 전해주고 있다.

 

   
▲ 이근표 前 한국공항공사 사장

▲태어나자마자 4.3을 겪다


이근표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1947년 2월 애월읍 수산리에서 3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듬해 4.3사건이 발발하자 중산간 마을이었던 수산리는 완전히 소개됐다.


그래서 가족들은 해안 마을인 애월읍 하귀리로 옮겨 정착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귀일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친을 따라 상경했다.


부친은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자동차였던 시발택시 2대를 갖고 운수업을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동북고)를 졸업한 그는 고려대 법대로 진학했다.

 

▲경찰에 입문하다


이 전 사장은 고려대 법대 졸업했지만 입학 때부터 법조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 때는 삼성, 현대, 대우 등의 대기업을 빼면 기업도 많지 않을 때였는데 진로를 고민하다가 경찰 간부후보생 시험을 보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1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찰 간부후보생 시험에 합격했고 경찰연수원 교육을 마치면서 그는 경위 계급장을 달고 성적순에 따라 서울에 배치를 받았다.


“동기생이 50명이었는데 성적 좋은 5명이 서울로 발령받았고 운 좋게 그 인원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로 배치된 그는 파출소 소장, 청와대 101경비단, 일선 경찰서 수사주임, 서울지방경찰청 정보 등에서 근무하다 공직 기강을 담당하는 청와대 사정비서실에서 10년 동안을 근무하게 된다.


이 때 총경으로 승진, 경기도 여주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가 1년 만에 치안본부(현 경찰청)로 발령받았다.


치안본부 방범기획과장, 감사과장 등을 거쳐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장을 맡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인 10.26과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사건인 12.12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의 별을 달다


이 전 사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8년 경무관으로 승진한 후 충북지방경찰청 차장을 거쳐 경찰청 감사관, 인천지방경찰청 차장,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에 치안감으로 경찰청 경무기획국장을 역임한 그는 2001년에는 치안정감으로 승진, 경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으로 영전된 후 2002년에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치안을 총괄하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재직 시에는 ‘강력범죄 소탕 100일 계획’을 수립해 강력범죄 해결에 집중, 강도범 검거율을 49.6%로 향상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대규모 과격 집회와 시위가 급증했지만 인권 보호와 안전 집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단 한 건의 불상사도 없이 대규모 시위를 관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특히 서울지방경찰청 내에 혁신추진위원회를 구성, 전 경찰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혁신에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각종 워크숍을 통해 발굴한 다수의 혁신과제들을 추진, 2003년 11월 경찰청이 혁신 추진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경찰 재직 시 그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자’를 지휘 방침으로 삼고 솔선수범했다.

   
▲ 서울경찰청장 당시 이근표 청장(가운데)이 2003년 서울경찰청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안내하고 있다.

▲경찰에서 이루진 못한 소망


이 전 사장은 30년 경찰 재직 기간 중 이루지 못한 소망이 단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고향인 제주의 지방경찰청장을 맡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고향 선배이며 검사였던 김원치 전 대검 형사부장(검사장)과 가끔씩 만나 식사를 하면서 언젠가는 자신은 제주지방경찰청장으로, 김 전 검사장은 제주지방검사장으로 부임해서 고향을 위해 일을 해보자고 약속했는데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주 출신이 제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적은 있었지만 경찰과 검찰은 제주 출신이 수장을 맡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도 제주 출신이 제주경찰의 수장을 단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경무관으로 승진했을 때 제주지방경찰청장(지금은 치안감)으로 갈 기회가 있었는데 향피제 때문에 고향에 부임할 수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제주에 가겠다고 했을 때 제주지방경찰청장으로 가면 더 이상 승진하는 것이 어렵다”며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불이익이 있더라도 제주지방경찰청장을 꼭 하고 싶었었다”고 털어놨다.

 

▲공기업 사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다


당시만 해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면 대한민국 경찰 수장인 경찰청장으로 영전하는 게 순리였다.


그런데 그 때 경찰청장 임기제가 도입되면서 임기 2년이 보장되자 이 전 사장은 경찰 총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옷을 벗었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물러날 때 윗선에서 차관급 정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믿지는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찰 생활을 그만두자 그는 공기업 경영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1년 3개월 정도 공부를 하다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공모할 때 원서를 제출했고 8명이 최종 면접을 받는데 최종 선발됐다”며 “공항 안전이 중요한 데 안전관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나름대로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배경을 짐작했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 김포공항의 유휴시설을 개발하는 등 신규 수익을 창출하는 데 힘써 3년 흑자 경영을 실현시켰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2007년 12월에는 한국일보에서 ‘올해의 CEO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 14개 공항 시설을 국제기준에 충족하도록 개선, 단 1건의 안전사고도 없는 무사고 공항 운영 목표도 달성했다.


2005, 2006년에는 고객만족도 최우수 등급을 획득, 한국능률협회로부터 한국경영대상 사회가치 혁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항공기 이착륙 무선시설 대부분을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하고 일부는 수출까지 함으로써 국가 기술경쟁력을 제고 및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둬 2007년 기술혁신경영대상도 받았다.

 

   
▲ 이근표 한국공항공사 사장(왼쪽 다섯 번째)이 2006년 제주국제공항 탑승관리동 개관식에 참석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제주공항과 제2공항의 바람직한 운영 방향


제2공항 건설과 관련, 그는 “개인적으로는 예산이 더 들더라도 지금의 제주공항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용역 결과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산읍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므로 반대를 하겠지만 제2공항은 제주의 관광 및 운송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고 지역발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대국적인 문제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 사장 재임 시절 3432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 제주공항 확장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그였기에 한 지역에 두 개의 공항을 운영하는 투 포트(Two port) 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잊지 않았다.


“현재 국내 14개 공항 중 제주, 김포, 김해 3개 공항만 흑자인데 제주에 2개 공항을 운영하다보면 경영비가 많이 들어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효율적인 운영을 강조했다.


투 포트의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는 “국제선은 통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세관,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의 인력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며 “제주공항은 국내선, 제2공항은 국제선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처럼 성수기 국내선이 포화되면 예비적으로 국제선이 취항하는 제2공항에 국내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두 개의 공항이 상호 보완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제주의 미래 발전에 대한 제언


이 전 사장은 제주의 개발 문제에 “도로를 많이 뚫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다.”고 토로했다.


“대규모 물류 또는 생산단지가 있으면 몰라도 관광지는 빨리 이동하려고 도로를 잘 닦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도로를 많이 닦아 놓다보니 차량도 많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도로 개발을 많이 하면 토지주는 땅값이 오르고 업체들은 돈을 벌고 정치인들은 실적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에 따른 이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자연 훼손 등  개발 손실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개발에 치우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자연유산이 사라지면 후손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에 보존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는 게 그의 소견이다.

 

▲제주 경찰 후배들에 대해 한 마디


이 전 사장은 “경찰공무원 생활은 힘들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때문에 어느 직업 못지않게 굉장히 보람된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내가 처음 경찰관이 될 때는 월급이 3만원에 밖에 안 될 정도로 박봉이었으나 지금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박봉이라고 볼 수 없다.”며 “자긍심과 자존심을 갖고 경찰 생활에 매진하고 자신의 일에 만족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겸손하고 배려를 하는 마음을 가지면 정말 보람있게 경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소박한 삶을 그리다


이 전 사장은 인터뷰 도중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다.”며 정치인이 될 뻔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여권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제안했지만 성격이나 체질에 맞지 않았고 돈도 없고 해서 사양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극동대학교 경찰행정학과의 석좌교수로 8년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경찰 조직과 이론, 인사관리론을 강의하고 있다.


“후배 경찰관을 양성하는 일이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남은 여생 중 고향 제주에서 후배들을 양성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 전 사장의 가족으로는 부인 도영성씨(68)와 1남1녀가 있다.


부인은 고등학교 친구의 조카였는데 친구 소개로 7~8년 사귀다가 결혼했다고 한다.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아들 원재씨(41)는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유학하고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물병원을 개업했고,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딸 민지씨(36)는 대형 로펌인 김&장에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