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마리의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의 바굼지오름.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늘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추사 김정희(1786~1856년)가 제주 유배 시절 제자 우선 이상적(1804~1865년)이 책을 보내준 보답으로 그려준 그림 ‘세한도’에 남긴 글이다.


소나무의 늘 푸른 절개만큼이나 올곧은 오름이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인성리 경계에 자리 잡은 바굼지오름(단산). 바위와 소나무가 서로 키 재기 하듯 한껏 뻗친 오름은 겨울에야 제 빛을 발한다. 제주 오름의 이단아답게 보통의 매끈한 능선을 자랑하는 오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약 2㎞ 동서로 길게 누운 오름은 표고 158m의 원추형으로 비교적 낮은 오름에 속한다. 제주에서도 바람이 가장 모질다는 모슬포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막고선 오름은 사납고 거칠게 날이 서있다.


하지만 오름은 왠지 모를 기품이 넘친다. 당당하다 못해 위압적이다.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선 오름은 한 마리의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이름 역시 박쥐의 제주어인 ‘바구미’가 지금의 ‘바굼지’가 됐다. 또 바구니를 뜻하는 簞(대광주리 단)을 써서 단산(簞山)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옛날 산과 들이 물에 잠겼을 때 이 오름이 바구니만큼만 보였다는 전설에서 왔다. 지질학자들은 이 오름을 제주도 최고 연륜에 속하는 기생화산으로서 오랜 세월의 파식(波蝕·파도에 의한 침식작용)과 풍식(風蝕·바람에 의한 침식작용)에 의해 지금의 골격 단계를 이뤘다고 말하고 있다.


바위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오름은 깎아진 절벽 옆으로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비록 키 작은 산이라 해도 아찔한 암벽 때문에 계단에 설치된 밧줄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아슬아슬 하게 오름과 줄타기를 하다보면 떨림과 두려움이 이어진다. 하지만 등 뒤로 펼쳐지는 대정과 안덕면 일대의 들판을 보고 있노라면 정상에서 펼쳐질 풍경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오른다.

 

   
▲ 바굼지오름은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에 의해 깎여 수직 절벽 모습을 보인다.

마침내 오른 정상에선 제주 서남쪽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바굼지오름 바로 옆에 형제처럼 붙어있는 산방산을 시작으로 용머리와 송악산, 모슬봉까지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형제섬과 마라도, 가파도까지 볼 수 있다. 각종 씨앗을 품은 푸릇한 대정 들판 뒤로 더 푸른 모슬포의 바다가 수를 놓는다.


이곳에서 추사 김정희는 무엇을 염원했을까?


바굼지오름과 추사의 인연은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에 유배됐다. 그는 오름의 기슭에 자리한 대정향교(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4호)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의 모습이었지만 추사는 오히려 글과 그림,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그는 향교에 ‘궁금하거나 의문이 있는 학문의 내용을 자신에게 묻고 들어라’는 뜻의 ‘의문당’이란 현판을 쓰고 지역 유생들과 교류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추사는 또 제주에서 서예사에 빛나는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다.


아직도 모슬포의 바람은 매섭다. 오늘도 고요한 들판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 바굼지오름 정상에선 제주 서남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왼쪽에 우뚝 솟은 산이 산방산이다.

추사도 이 세찬 바람을 맞지 않았을까. 아마 유배의 시련으로 제주의 바람은 더 시리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제주에서 보낸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기에 당대 최고의 학자로 우리 곁에 남았다.
오랜 시간 바람과 파도를 견뎌낸 탓일까. 바굼지오름은 위용스럽다.


임주원기자 koboki@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