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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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사회2부장
‘설 명절을 맞아 조그만 성의를 표합니다. 홀로 사시는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나눠주세요.’

지난 19일 오전 10시 서귀포시 서홍동행정복지센터에 쪽지와 함께 10㎏들이 쌀 100포대가 배달됐다.

같은 날 오후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기부자가 보낸 10㎏들이 쌀 100포대가 또다시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오전에는 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서귀포시 동홍동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을 찾아 직원들에게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며 “많지 않은 돈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당부했다.

2001년부터 설과 추석이 돌아올 때마다 제주시 일도2동, 화북동에 쌀을 기부하고 있는 익명의 시민은 최근에도 제주시청에 10㎏들이 쌀 1000포대(2500만원 상당)를 보내왔다.

제주시에 따르면 이 익명의 기부자가 올해까지 17년 동안 제주시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낸 쌀은 총 1만7800포대(4억5000만원 상당)다.

자신이 쓸 것도 부족하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세상에 설 명절을 앞두고 도내 곳곳에서 훈훈한 미담 사례가 전해지고 있다.

단체를 통한 봉사 활동도 소중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봉사하는 일은 더욱 숭고하다.

매년 설과 추석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언론에서는 ‘얼굴없는 천사’ 이야기가 회자된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전화를 걸어 읍·면사무소, 동주민센터에 돈을 놓은 곳을 알리거나 택배 회사를 통해 돈과 물품을 요양원, 경로당 등에 배달하는 이 익명의 기부자를 우리는 ‘얼굴없는 천사’로 부른다.

몸이 불편한 평범한 시민이 동사무소를 찾아 어렵사리 한 두푼 모은 돼지 저금통을 내놓고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해결하면서도 아껴둔 용돈을 후원금으로 보내는 할아버지는 어떤가.

우리 주위에는 손님이 없어 매출이 뚝 떨어졌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어르신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소규모 음식점 사장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모두가 ‘왼손이 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세상인데 넉넉한 여유가 없으면서도 명절 때만 되면 이름없이 가진 것을 내놓으니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그들은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우리 주변에 더불어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이웃들이다.

이들의 기부 행위는 누가 알아주길 바라거내 대가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어려운 이웃들이 조금이나마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뿐이다. 의미 있는 일에 돈을 쓴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이다.

남 몰래 기부하는 사람들의 선행이 가슴뭉클한 이유다.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어려운 이웃들은 늘어만 가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그들이 필요한 만큼 충분하지 않다. 매년 수백억원씩 사회에 기부하는 대기업의 힘만으로도 안 된다.

어려운 때일수록 함께해야 한다. 절망의 끝에 선 어려운 이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애정어린 관심이 필요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경제난에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호주머니를 열어 쌈짓돈을 보탠다면 사회는 한결 훈훈해지고 살맛이 날 것이다.

인정은 베풀수록 깊어지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경제가 어려울 수록 기부 문화가 더 널리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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