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서귀포다움 그리고 도시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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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시장(市長)일까, 시장(市場)일까?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데, 과연 시민은 주인답게 도시 변화에 관여하고 있는가? 아니, 이 시대의 절대 강자라 불리는 자본과 권력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이상의 질문은 ‘행복한 삶’을 부제로 달고서 출간된 ‘도시의 발견’에서, 저자인 정석 교수가 도시인들에게 던지는 개발의 화두다. 특히 재개발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발생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현상을 방지하거나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우리에게 숙제로 남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둥지 내몰림’이란 우리말이 그 의미를 실감나게 전한다.

요컨대 빈민가에 거대자본이 몰려와서 주거지를 개발하면 임대료 등이 치솟아 원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소위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의 논쟁을 유발하는 도시개발의 대표적 난제다.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제주에서는 달빛이 머무는 마을에서 카페촌으로 변신한 월정(月停)리가 유사한 사례로 간주된다. 초승달 모양으로 뻗어있는 월정리 해변은 멸치떼들이 불을 보고 달려드는 어촌에서 1000여대의 차량과 일평균 4000~5000명의 여행객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변했다.

한편 관광지화를 뜻하는 투어리스티파이(touristify)에 젠트리피케이션이 합성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현상이 최근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성수기에 최대 6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북적거린다. 때문에 주민들이 치솟은 집세와 주택난 등으로 고향을 떠나, 원주민 인구가 17만5000명에서 5만5000명으로 감소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소음·쓰레기·부동산 문제가 폭발해 관광지의 1일 입장객수를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지역주민과 관광 산업 간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신규 호텔 건립이나 단기 임대아파트 승인 등을 유예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2014년 7월, ‘희망·행복·꿈의 서귀포시 만들기 세미나’에서 ‘서귀포다움’을 역설한 서귀포 시장(市長)은 도시개발의 방향을 일찌감치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연과 공존하고 화합하던 도시의 매력이 떨어져서 서귀포다움이 사라지고 있음을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그 뿐, 서귀포는 구도심의 고층건물군과 신시가지의 아파트 정글로 인해 일부 시민들은 한라산과 바다 조망권, 소위 행복권을 잃어버릴 지경이 되었다.

2016년 7월, 서귀포시의 새로운 시장은 다시 ‘서귀포다움의 회복’을 화두로 시정을 열었다. 그리고 ‘서귀포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벤트를 통해,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경관, 개발이 아니라 보전된 서귀포'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시 일원에는 난개발이 계속되고 도심지의 빌딩들은 도시경관이 무색하도록 치솟는다. 재개발의 가장 큰 화근은 저 홀로 서서 우쭐거리는 고층건물이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낮은 건물들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다소곳이 곁을 내주며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높은 건물은 안하무인격으로 도시의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제 서귀포다움은 시민들의 삶과 문화, 바로 그 의식과 행동에 달렸다. ‘도시가 물건이라면 도시 설계는 제작이겠지만, 도시가 연인이라면 도시설계는 사랑일 것’이라는 정석 교수의 이야기처럼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행복이 있는 서귀포’라는 시정 캐치프레이즈가 실생활이 되도록. 가끔은 길가에 오순도순 앉아서 도시의 숨소리를 들어보는 거다. 서귀포를 사랑하는 연인처럼 대할 때, 그 또한 우리네 삶을 오래토록 품어주지 않을까.

아! 시장(市場), 서귀포매일올레시장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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