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아한 능선을 자랑하는 대비오름의 전경.

옛날 이야기 속에서 하늘나라의 선녀들은 자주 지상의 인간세상에 내려와 노닐다 간다. 우리에겐 하루하루 힘겨운 인간세상의 삶이 그들에게는 짜릿한 일탈, 혹은 느긋한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에 자리잡은 대비오름은 이런 선녀들의 놀이터였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대비라는 이름의 선녀가 이 오름을 즐겨 찾았다고 해서 ‘대비오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데, 사실 이 ‘대비선녀’에 대한 설화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어 그 내용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멀리 한라산과 산방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이 곳 대비오름에 올라서면 대비가 왜 이곳을 찾았는지 알 수 있다.


오름이 자리한 광평리의 옛 지명은 ‘넙은곶’, ‘넙은드르’로 주변이 두루 다 넓게 펼쳐진 평야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넓은 평지로 이뤄진 마을인데, 주로 농경지지만 소와 말을 방목하는 초지들도 많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말을 방목했다가 나라에 받쳤다고 한다. 지금도 오름 주변에는 말을 방목하고 있다.
 

이 대비악 주위에는 이돈이오름, 왕이메오름, 괴수치오름, 돔박이오름, 새별오름, 정물오름 등 높고 낮은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데, 대비오름은 이 중간께 자리 잡고 있다.


거대한 풍채를 자랑하는 오름들과 달리 대비오름은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뤄진 봉긋한 모양새라 선녀의 놀이터로 제격이다.


표고 541.2m, 비고 71m의 비교적 낮은 높이임에도 다른 오름들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사병으로 조망권이 좋다. 정상에서면 북쪽의 한라산과 서귀포시 일대를 조망할 수 있고,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마라도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 대비오름에는 2개의 얕고 작은 원형굼부리가 형성됐다.

이맘때쯤 대비오름을 오르면 새 봄을 맞아 겨울내 움츠려 들었던 온갖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며 새 생명의 움트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비오름의 백미는 가을. 오름 전체를 뒤덮는 억새의 장관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별도의 등산로가 없는 대비오름은 먼저 이곳을 방문한 등반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길을 따라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다만 곳곳에 지뢰처럼 가시덤불들이 산재해 있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는데 가급적 튼튼하고 가시덤불에 긁혀도 아쉬움이 없을 만한 복장을 착용하는 게 좋다. 아무리 좋은 풍광이라 한들 아끼는 옷에 잔뜩 올이 나가버리면 내려오는 길에 입맛이 쓰다.


그래도 대비오름을 찾는 발걸음은 여전하다. 봄에는 고사리를 캐러, 가을에는 억새의 장관을 보기 위한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정상에 서면 남·북쪽으로 작고 얕은 2개의 굼부리가 형성돼 있는 것이 보인다. 굼부리에는 미나리아재비, 솜방망이 등의 야생초가 널리 분포하고 있다. 북쪽 비탈 일부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지만 이외 비탈은 대체로 완만하다.


굼부리의 능선을 따라 여유있게 오름을 한 바퀴 건다보면 곳곳에 묘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한 평생을 살다가 떠난 이를 마을 이웃들이 함께 상여를 메고 오름 능선 자락에 눕혔을 것이다. 그래서 민가가 가까이 있는 오름에는 자연스럽게 마을의 공동묘지가 만들어 진다. 그래서 제주의 오름은 망자의 동산이라고 한다.

   
▲ 대비오름 정상에 서면 멀리 한라산과 산방산, 아름다운 오름들이 지평선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비오름 정상 동·북쪽으로는 영아리오름이, 남쪽에는 대병악과 소병악이 자리잡고 있다.

대비오름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핀크스골프클럽이 서쪽에는 캐슬랙스골프클럽이 자리잡고 있다. 대비오름을 찾기가 어렵다면 핀크스골프클럽을 지도에서 검색해 길을 따라 산록도로(1115번)를 따라 가다가보면 만불사란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간판 맞은편으로 삼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으며 잘 포장된 오솔길이 나온다. 이 길 따라 300여 m를 가면 오름 기슭에 도착한다.


해질녘 오름의 능선 너머로 지는 석양이 선녀만큼이라 아름답고 장관이다. 이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오름을 대비선녀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려오는 길에 뒤를 돌아 대비오름을 바라보니 더욱 단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