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가 고래동굴에 가득 찼다. 작은 굴을 통과하고 바위를 기어오르자 안에는 별천지처럼 넓다. 용암이 흘러 굳어진 동굴천장에 새겨진 달빛은 파도 소리를 감싸지 못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이 온통 비단무늬로 탈바꿈 하였다.


큰고래가 살았다하여 붙여진 동안경굴은 우도팔경 중 하나이다. 그곳은 보통 때에는 물에 잠겨 있다. 썰물이 되어야만 동굴 안에 들어갈 수 있어서 웅장하고 탁 트인 경관은 무릉도원을 닮았다고나 할까.


오래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기에 자연 그대로 보존되었고 일 년에 한 번 동굴음악제가 열린다. 올해에는 ‘충암 김정의 우도가를 노래하다’의 특별이벤트까지 마련되었다. 마림바 연주, 성악, 서예 퍼포먼스, 제주인의 소리와 몸짓이 이루어진다기에 발길을 옮겼다.


15세기 저명한 문호인 충암 선생의 ‘우도가(歌)’ 시비가 지난해 검멀레 해안가 입구에 세워졌다. 이곳을 거쳐야 동안경굴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속내가 궁금하다.


우도동굴음악회 10주년 되던 해, 제주에서는  영국 서북부의 하루 동안 걸리는 먼 거리를 에둘러 동굴 탐사를 했다. 그곳에는 입구부터 거대한 치아를 드러내고 있어서, 참가자들은 웅장한 자태와 위용에 넋을 잃고 말았다. 테너 H교수는 작품 속에 시도된 관현악의 현란함을 듣고 우도동굴에서 다른 종류의 악기를 등장시키며 소리공명을 연구하였다.


바닥에 항시 고여 있는 물과 자연음향을 통하여 소리실험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청량한 음색으로 <오 솔레미오>를 부르자 지구상의 반대 지역이 섬 소풍 간 것 치고는 먼 여행지가 된 셈이다. 언젠가는 영국의 섬사람들도 우도동굴음악제에 참석하러 오는 날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칠순을 넘긴 서예가 P씨가 미색 명주 한복차림을 한 채 울퉁불퉁한 동굴바닥에서 휘호하고 있다. 그 자국은 충암선생의 <우도가> 내용 중 ‘태음의 기운이 서린 굴에 현묘한 이치가 머문다.’는 뜻을 새긴 ‘태음지굴현기정(太陰之窟玄機停)’이다. 특수 영상장치에 의해 한지에 휘호하는 모습이 동굴천장에 비추어졌다. 기계의 발달이 천장에 본래 새겨진 글씨로 착각하게 하고 있어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번 동굴 음악제가 교수의 발상을 시도한 후 성년을 맞고 있었다. 축하공연은 올해 처음으로 연주하는 마림바 공연이 인상 깊다. 너 댓 개의 봉을 두 손으로 이용한 울림이 천장에 닿았다 떨어지는지 상쾌하게 퍼진다. 옥구슬이 굴러가듯 파도와 어우러진 맑은 영혼의 소리가 이런 것일까.


교수가 물허벅 장단을 치면서 이어도사나를 부르고 무용단은 태왁춤을 동시에 추고 있다. 예전에 초가지붕 위에서 보았던 박으로 만든 태왁과 장인이 제작한 둥근 나무망사리를 도구로 삼으니 춤의 가치는 더해졌다. 앳된 무용수가 쌀쌀해진 날씨의 바닷물에 맨살을 담그자 붉은색 피부로 변하며 움찔거린다.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소프라노 H는 기악과 합창단에 맞추어 미션의 주제곡 ‘넬라판타지아’와 이은상 詩를 작곡한 ‘갈매기’를 노래하자 파도소리와 안성맞춤이 되었다. 다함께 ‘바위섬’을 부르며 막은 내려졌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내 마음도 잠시나마 맑은 영혼이 되었다.


문화공간이 자연동굴에서 재탄생한 셈이다. 동굴 안의 평편한 바닥이 공연 무대가 되고 약간 경사진 곳은 자연스럽게 객석으로 변했다. 굴 안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매워졌다 동굴음악회는 신비한 자연공명에 감동하고 새로운 공간미학의 발굴로 다음 해에도 찾고 싶게 충동질했다.
한 마리 나비가 충암 선생인 듯 생각의 날개로 합환하였다. 맑은 바람 타고 맘껏 날아보기를 소망하였다는 선생의 오백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그는 제주에 유배를 온 지식인이었다. 선생의 <제주 풍토록>, <우도가>는 16세기의 제주의 실상을 기록하였기에 전승 되어야 할 문화유산인 셈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기는커녕 후진을 양성하였고 어부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를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우도가>는 동굴의 신비로움을 환상적으로 노래한 한 편의 장대한 판타지였다.


바닷물이 조금씩 굴 안으로 밀려온다. 관객의 함성이 고래굴 안에 퍼지자 동안경굴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빠져 나왔다. 두어 시간의 공연이었다.


배를 타려고 부둣가에 섰다. 윤슬이 수정 같다. 멀리 한라산을 가슴에 안으며 종달리 지미봉과 성산일출봉이 가까이 있어서 손으로 건져 올릴 듯싶다. 하늘이 손바닥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