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제주목사 집무실이었던 홍화각 전경. 탐라고각(耽羅高閣)이라 불릴 정도로 제주목 관아 건물 중 가장 웅장했다.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는 제주목(濟州牧) 관아였다. 관아 건물은 1434년(세종 16) 대화재로 모두 불타면서 소실됐다. 22대 제주목사 최해산이 재건을 시작, 이듬해인 1435년 골격이 갖춰졌다. 500년 조선시대 내내 증축과 개축을 하는 대역사(大役事)가 이뤄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헐리면서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제주목 관아 터는 1993년 국가사적 380호로 지정됐고, 발굴과정에서 초석·기단석 등 집터와 각종 유물이 나왔다. 탐라순력도 등 당대의 문헌 및 전문가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기본 설계가 완료됐다.

제주시는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 9월 공사에 착수, 2002년 12월 3년 만에 제주목 관아 복원을 완료했다. 전체 면적은 1만9533㎡에 총사업비는 175억원이 투입됐다. 시민과 관광객 1만3000여 명의 기증한 기와 5만 장이 들어갔고, 10t 화물차 95대분의 목재가 사용됐다.

정치·행정·사법·군사·문화의 중심이던 제주목 관아의 건물 중 홍화각은 제주목사의 집무실로 탐라고각(耽羅高閣)이라 불리었을 정도로 관아 건물 중 가장 웅장했다.

 

   
▲ 제주목사가 홍화각에서 집무를 보는 모습을 재현한 모습.

왕의 어진 덕화(德化)가 백성에게 두루 미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홍화각(弘化閣)이라고 명명됐다.

제주목사는 군사령관을 겸직했다. 1466년(세조 12)부터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라는 직책이 부여돼 육·해군을 통솔했다.

이런 까닭에 제주목사의 집무실인 홍화각은 팔도 관찰사가 머물던 감영과 마찬가지로 영청(營廳)이라 불렸다. 제주목사는 전라도관찰사의 임무를 일부 넘겨받았고, 정의현감·대정현감을 지휘·감독하는 전권을 행사했다.

홍화각은 1435년 최해산 목사가 창건한 뒤 1648년 김여수 목사에 이어 1772년 양세현 목사가 중수했다. 1829년 이행교 목사가 마지막으로 개축했다.

제주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해 한성부판윤(현 서울시장)을 역임한 고득종의 친필인 홍화각(弘化閣) 편액은 삼성혈 내 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현재 내걸린 현판은 탁본해서 새긴 것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팔작지붕이 올려졌다. 건축면적은 155.82㎡(47.13평)이다.



좌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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