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숙제, 그리고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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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BC 1100년께 고대 중국의 은나라 말기,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일대를 다스렸던 제후국 ‘고죽국(孤竹國)’의 두 왕자다.

부왕이 죽으면서 셋째 아들인 숙제에게 왕위를 계승하도록 유언했으나 숙제는 맏아들 백이에게 양보한다.

하지만 백이는 부왕의 유언을 받들어야 한다면서 왕위 계승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로 피신해 버리자 숙제도 형을 따라 국외로 떠났고, 결국 왕좌는 둘째 아들에게 돌아갔다.

▲백이와 숙제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청절지사(淸節之士)로 칭송을 받는다. 서로 왕위를 양보했다고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의 절개와 지조를 본받자는 뜻에서다.

고죽국을 떠난 이들 형제는 몸을 의탁하기 위해 찾아간 주(周)나라를 찾아갔으나 주 무왕(武王)은 선왕의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천자국(天子國)인 은나라를 침공, 멸망시켜 버린다.

이에 이들 형제는 “아버지의 상중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효가 아니며, 신하가 주군을 주살하는 것은 인이 아니다”라며 주나라의 곡식을 거부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을 먹고 살다가 굶어 죽은 것이다.

백이·숙제 사당에는 주자의 글씨로 ‘백세청풍이제지비(百世淸風夷齊之碑)’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백세청풍은 ‘백 세대에 걸쳐 부는 맑은 바람’이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 후세의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을 의미한다.

‘맹자’에는 ‘백이·숙제는 성인 중에도 맑은 분(夷齊聖之淸者)’이라고 기록돼 있다.

▲수양산 고사리가 백이·숙제 두 성인(聖人)으로 인해 유명하다면 제주의 고사리는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라고 맛과 영양이 풍부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예로부터 제주 고사리는 ‘궐채’라고 불리며 임금님께 진상품으로 올라갔을 정도다.

제주의 제사상에도 반드시 고사리가 올라간다.

고사리(高事理)는 높은 이치가 담긴 일을 한다는 뜻으로 하늘로 뻗어가는 기운의 모습을 하고 있고 손의 모습과 흡사해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백이·숙제가 고사리만을 먹으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면, 제주사람들은 한라산 청정 고사리로 조상들에게 예와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제주는 고사리 철이다.

제주의 중산간은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29, 30일에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국가태풍센터 서쪽 일원에서 ‘제22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축제’도 열린다.

제주의 청정 자연을 벗 삼아 제주 고사리를 꺾으며 고사리에 담긴 이야기와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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