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정신으로
프로정신으로
  • 제주신보
  • 승인 2017.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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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전 중등교장/시인

요즘 제주의 들녘은 고사리 꺾는 사람들로 붐빈다. 소위 꾼들은 이른 시간에 산지를 누비며 많은 고사리를 채취하여 한철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풍광을 즐기며 덤으로 고사리를 꺾는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한 모임이 주최한 고사리 꺾기 행사에 참여했다. 꾼들이 돌아가는 10시쯤 삼십여 명 회원들이 대록산 주변에서 보물 찾는 전사처럼 흩어졌다. 등에 가방을 메고 복부에 주머니를 두르고 마른 삼나무 가지를 지팡이 삼으니 그럴듯한 차림이다. 처음 발을 딛는 곳이라 작은 기대 속에 오름을 향해 올랐다. 억새와 찔레와 청미래덩굴, 잡목들이 엉클어진 곳곳을 무수히 지나다닌 발자국들이 거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고사리를 꺾으려면 새 길을 개척하는 도전이 필요하다. 편한 길섶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미 다녀가기 일쑤다. 고사리 한두 개 꺾는 데 매번 머리를 숙여야 한다. 덤불 속에서 실하게 솟아오른 놈을 얻으려면 조심하는데도 팔다리에 가시 자국이 남는다. 이 정도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겠다면 염치 없는 일일 터이다.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인 채 기꺼이 제 몸을 내주는 그 마음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혼자서 90분 정도 휘저으니 가방이 제법 볼록해졌다. 그뿐이랴. 무거운 생각들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자연의 품에 안기니 행복감이 일었다.

자연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베풂을 실천한다. 차별하지 않고 누구라도 받아들인다. 훌륭한 스승이며 대단한 프로다.

세상에는 프로정신을 발휘해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 사람이 많다.

9·11테러 때 미국 소방관들은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에 타 무너지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계단을 망설임 없이 올랐다. 희생되는 소방관들을 보면서도, 누구도 아래층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1912년 4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타닉호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침몰 직전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로 인도한 후 배로 돌아갔다. 사명감에 불타는 선장의 외침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제군들아, 수고했다. 자네들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도 아주 잘.”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도 프로정신을 만난다. 아침 산책길에서 가끔 클린하우스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아저씨가 고압 분사기로 청소하면 아주머니가 걸레로 닦는다. 여러 차례 깨끗이 닦으니 음식을 올려놓고 먹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해 전 발목 골절로 입원했을 때였다. 건축 일을 하다가 4층에서 떨어져 온갖 장이 파열되고 뇌가 손상된 환자를 여자 간병인이 돌보았다. 배설물 처리가 힘들지 않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런 생각하면 이 일 못 합니다. 자기 아이의 것처럼 구수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19대 대통령 후보로 등록했다. 저마다 공약을 내놓고 표를 달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다. 국민들은 주요 후보들이 벌이는 TV 토론을 지켜보며 적임자를 찾고 있다. 누가 인품과 능력을 겸비하고, 생존의 바탕인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실현 가능한 돋보이는 정책을 제시하는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두루두루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심성은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국가는 어머니와 같다.’라고 말했다. 자녀들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 마음보다 더 포근한 곳이 어디일까.

달려가서 안기고 싶은 대한민국, 프로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어머니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