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낭자한 갈맷빛 들판을 헤집으며, 고사리를 꺾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제까지 팔 걷어 부치고 고사리를 꺾어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머니나 아내가 꺾어 온 것을 제사상에 올리거나 가끔 별미로 먹으면서도, 고사리 채취는 제주 여인네들의 일이라는 가당찮은 편견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도착한 여명(黎明)의 들판에는 새벽이슬이 촉촉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허리를 굽히고 수풀 속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혹여 길을 잃지 않도록 혼자 멀리 가지 말라는 아내의 당부와 함께, 세 시간 후에 출발지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로 길을 나누었습니다.

 

고사리는 지천에 널렸었지만, 덤불 속에 있는 것들이 유독 통통하게 살이 올라 실했습니다.

 

허리를 굽혀 덤불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으면, 고사리들이 마치 미어캣(meerkat)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나와 마주쳤습니다. 어린 고사리들의 낭창낭창한 허리를 꺾으며, 왠지 평화로운 자연의 난폭한 약탈자가 된 것 같은 고약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영호 시인의 ‘고사리’도, 잠시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아물지 않은 4·3의 상처를 떠올리는 화자의 독백이, 화살처럼 가슴에 와 박혔기 때문입니다.

 

‘들판 어디에든 꼭꼭 숨어 있어야 해/총알이나 죽창을 피하기 위해선 함부로 하늘을 쳐다봐선 안 돼/ 두 눈에 불을 켠 산 자들이 너를 만나기만 하면 여지없이 허리를 꺾어 버릴거야/ (중략) 4·3의 짐을 지고 북망산천을 떠돌고 있는 형님의 제사상에 올릴 살진 고사리를/아내는 절하듯 꾸벅꾸벅 꺾고 있다./’(시 ‘고사리’ 부분)

 

고사리로 연명하다 죽은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나무라는 성삼문의 서슬 푸른 절의가(節義歌))도, 한 순간 제 부박(浮薄)한 삶의 정수리를 죽비처럼 때리고 흘러갔습니다.

 

그렇지만, 푸르름으로 눈부신 들판에서, 무거운 사색의 시간들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소풍 나온 아이처럼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가시에 손이 찔리고 긁혔으며, 비만의 뱃살이 접혀 허리 숙이기가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봄의 속살을 만지는 떨림과 함께 배낭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마음은 그만큼 가벼워 답청(踏靑)나온 한량(閑良)처럼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큰 솥 가득 고사리를 삶아, 옥상 가득 내려앉은 봄볕에 내다 말렸습니다. 올해는 아버님 제사상에 손수 꺾은 고사리를 올릴 수 있다 생각하니, 얼마나 뿌듯한지 몰랐습니다. 저녁상에는, 초록빛 고사리에 돼지고기와 마늘김치를 넣어 조리한 아내의 명품요리가 올라왔습니다. 제철은 지났지만, 짬을 내, 몇 번 더 고사리 꺾으러 가려 합니다. 가는 봄의 활력을 한 아름 꺾어다 말렸다가, 나른한 삶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심신을 재충전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