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지 않는 꽃처럼
상처 받지 않는 꽃처럼
  • 제주신보
  • 승인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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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백약이오름을 오른다. 북쪽 바다를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다. 내 몸은 한낱 풀잎 같아, 금방 공중으로 날아갈 것만 같다. 바람과 맞서 걸으며 힘겨루기를 한다.

가녀린 꽃대를 길게 뽑아 올린 개민들레가 바람에 허우대를 이리저리 흔든다. 키 작은 양지꽃은 납작 엎드린 채 숨을 고른다. 성가시고 고달프나 저항하지 않고 바람 따라 몸을 맡길 뿐이다. 뿌리째 뽑힐 듯 요동칠 때마다, 더 낮고 부드럽게 허리 굽는다. 잠시 바람이 잔잔하면 다시 곧추세우는 자존감,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터득한 지혜다. 상처 한 점 입지 않은 조그마한 얼굴에 어린 도도함이라니. 해맑은 얼굴에 반해 기꺼이 자세를 낮춘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는 것 같지만, 내밀한 걸 간직하는 신비가 있다. 한낱 미물이나 심금을 울리는 감동으로 온다. 좀체 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던 한라산이 말갛게 구름옷을 벗었다. 성큼 다가온 거리다. 손에 잡힐 듯 단숨에 오를 것 같지만, 함부로 허락하지 않는 위엄이 있다. 마치 잡히지 않는 꿈 같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한 첫걸음은 멀고 아득하다. 시작은 도약을 위한 시험일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여느 때보다 시름 깊다. 조금만 생각을 낮추면 설 자리는 찾을 수 있을 텐데…. 눈앞의 길에 눈을 주면 미지의 길은 무한하다.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모색의 시간은 곧 기회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 주춤거리지 말고 길을 떠나라 권하고 싶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움츠리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천천히 걷다 보면 옆으로 시선을 둘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우주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걷고자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TV에서다. 모 유명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젊은이가, 대장간에서 대장일을 하는 걸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특별한 길, 그 길을 자신이 가고 싶은 길임을 알았다고 한다. 십 년을 갈고 닦아야 장인이 될 수 있다는 그는, 칼을 만드는 장인을 꿈꾸고 있었다.

요즈음은 IT 시대다. 전공과 잘 접목 시키면 새로운 기법의 대장장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기구며 공구는 물론, 쇠붙이로 빚는 예술품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이글거리는 불길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은 자긍심으로 당당했다.

취업이 곧 ‘벼슬’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시대상이 됐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게 꿈인 청년들의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 주어야 할지. 먹고 살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밥그릇 찾기란 꿈에 불과한 현실이다. 한 시대를 먼저 걸어온 어른으로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작지 않다.

해마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취업정책은 별반 다를 것 없다.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일시적 공약만 남발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에서는 최우선으로 안보와 일자리부터 창출하는 정부이길 소망한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새로운 문은 절로 열리는 법이다.

젊은이들이여, 유연한 사고를 가지라. 고난의 시험대 위에서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마라. 바람에 흔들리는 개민들레처럼, 납작 엎드린 양지꽃처럼. 아파도 상처 받지 말고 허리 곧추세우고 하늘을 우러러보자.

꼿꼿함을 잃지 않는 것은 자존이요, 긍지다. 분화구 언저리를 돌다, 문득 이런 편지를 젊은이들에게 띄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