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山寺)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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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허하거나 산만해지면 의지할 곳을 찾고 싶어 한다. 부처를 믿는 사람은 절을 찾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교회를 찾기도 한다.

필자는 언제나 마음이 산만해지면 산사를 찾는 편이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도량을 산책하고 나면 흩어 진 마음이 안정되고 모아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한라산 남쪽기슭에 닭이 달걀을 품은 듯 포근하고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법화사(法華寺)를 찾았다. 원(元)제국이 제주도를 점거해 있던 13세기 말엽에 창건되었다는 서귀포시 하원동에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문화재 지방기념물 13호로 지정된 천년 사찰이다.

도량으로 들어서자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심신을 일깨운다. 이곳 법화사는 조선시대 초까지도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사노비(寺奴婢)가 280명이나 되는 대사찰이었다고 전해진다. 뒷날, 명(明)나라 황제가 사신을 보내 거둬갈 만큼 몽고의 명장(名匠)이 제작한 유명한 불상이 모셔졌던 절이기도 하다.

15세기말경 거대한 법화사는 허물어지고, 1987년부터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들어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도량 모퉁이에 발굴되어 모아진 주춧돌들만이 당시에 대사찰이었음을 보여주면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 옆 약수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천년 전 모습 그대로 오가는 이들의 감로수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규모가 경희루의 연지와 같다는 구품연지는 약수터 감천수의 물을 받아 우화한 백련과 홍련을 키우며 길가는 나그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육조 혜능스님의 “말이 없는 것을 믿으면 저절로 입에서 연꽃이 핀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새롭게 세워진 구화루(九華樓)에선, 구품연지에 무수히 쏟아지는 달과 별빛을 감상하며 객들과 시를 읊조리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듯싶다.

구품연지를 중심으로 사방엔 법륜상을 비롯하여 조계종단의 거목이셨던 故 서옹스님과 탄허스님의 선시비와 제주도가 낳은 서예대가이셨던 故 소암 현중화 선생의 휘호비 그리고 해신 장보고 대사의 석상 등 각종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음이 색다르다.

이곳 주지 시몽스님께서는 법화사를 통일신라 장보고 청해진 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예측하고 있다. 당시, 장보고는 해상의 왕으로서 원나라와 일본을 왕래하는데 제주도를 해상경영 본원지로 이용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또한 주춧돌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들이어서 신빙성을 더해준다고 한다.

사찰에 머무르다 제주시를 향해 돌아오는 길, 한라산 제2횡단도로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단풍들이 너무도 아름답다.

<현태용 제주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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