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과 잘 맞습니까?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부부가 가깝다 해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경에 이른 당사자들이  이혼 사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한때는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 사람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맺은 인연이니 잘 가꿔야 하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힘들 때가 많다. 부부라서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양보는 할 수 있어도 맞출 수가 없다.


늦은 저녁, 부부가 하루 있었던 일들과 감정을 털어놓는 시간이면 아내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며 공감해주길 바라는데, 나는 사실과 결론만을 재촉하곤 한다. 아내는 기분이 안 좋으면 입을 다문다. 침묵도 말이다. 불만 표시의 한 방법이다. 숨겨진 진의가 눈짓, 몸짓에도 묻어난다. 이때가 위험하다. 한마디 잘못 했다간 벼락 맞는 수가 있다. 기분이 왜 안 좋은지 열심히 분석해본다. 모르겠다. 한집에 살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나를 외롭게 한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그 사이에 커다란 강이 흐르고, 벽이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내와 나는 거의 모든 게 다르다. 느긋한 아내, 성마른 나, 아내는 텔레비전과 불이 켜져 있어도 잠을 잘 수 있는데, 나는 베게 높이까지 맞아야 어렵게 잠이 든다. 입맛도 맞춰지질 않는다. 너무나 다른 취향과 성격을 지니고 어떻게 사귀고 결혼을 결심했는지 모를 노릇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 마련인데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가. 수십 년을 서로 다른 삶을 살다가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부부관계에선 더욱 그렇다. 나같이 만들려는 고집으로 싸우고, 안 맞는다고 헤어지기도 한다.


‘관둬요’ ‘됐어요,’ ‘안 해도 돼요’ 아내의 반어법 속엔 여러 함정이 숨어있다. 아내의 마음읽기, 난해한 작업이다. 때로는 속내를 간파한 내가 용건을 앞질러 말하는 게 묘수가 되기도 한다. 사소한 간섭이나 짜증의 이면에 숨겨진 마음을, 상대가 진짜 원하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 직접 말하기 거북한 요구사항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말’ 뒤에 감춰진 ‘마음’에 대한 분석, 참 어렵다. 그래서 새겨듣고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때로는 돌려서 말한 걸 돌려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말 속엔 교묘한 공격이나 칭찬하는 듯 하지만 비꼬고 있는 아픈 가시가 감춰져 있을 수 있다. 


아내는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솔직해진다는 것은 의외로 상대에게 책임과 부담을 떠넘기는 행위다. 멀리 내다보며 살아가야할 사람이라서 말을 아끼게 된다. 부부로 살아가면서 말을 덜해서 후회하기보다 더해서 후회한다. 모든 것을 털어 놓는 것과 얼마큼은 속마음을 남겨두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지는 모를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혼자 묻어두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배려와 헌신이라고 믿는다.      

        
아내의 말 중에 ‘서운하다’는 말이 있다. 이게 해석이 무척 어렵다. ‘서운하다’라는 말은 마음속으로 어떤 기대를 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즉, ‘내가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듣냐? 네가 내 표정이나 상황을 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맞춰줘야지, 왜 그걸 못해?’가 바로 아내의 ‘서운하다’이다. ‘말’뿐만 아니라, 표정이나 억양, 목소리 등으로도 의사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서운하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후환이 두려운 나는 초기에 그 낌새를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귀신이 아닌 바에야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가 있단 말인가. 젊은 날의 만남에서 여자의 말과 표정을 해석하지 못해서 어긋난 인연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면서 힘든 것이 ‘인간관계’라는데 그 중에서도 부부관계가 더욱 어렵게 여겨진다. 아내는 자신의 행동이나 말보다 속마음을 봐주길 바란다. 반면 나는 아내의 진심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언행만 보고 속단하려 든다. 훨씬 더 간편하기 때문이다. 오해와 갈등은 이런 모순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해석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불편한 나는 아내의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려 하면서도, 아내는 언제나 내 언행 이면의 속마음까지 알아주길 바란다. 내가 편한 방식대로만 판단하고, 돌려 말해놓고도 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내 잘못을 짚어 봐야 해석의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듣는 게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봐서 내가 바보인 것은 틀림없다.


맞추면 되지 않냐고? 그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