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공
진정한 성공
  • 제주신보
  • 승인 201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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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겸/수필가

초록빛 바람이 분다. 나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경계를 봉인해제 시킨다. 인류의 유전자속에 각인된 오래된 기억때문인가.


일주일에 두 번 수산초등학교에 방과 후 수업이 있다. 따분하기만한 도시의 일상 풍경으로부터 벗어나 맘껏 숲의 초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루 12시간 학원에 갇혀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라면 꿈도 꿀 수 없었던 달콤한 여유로움이다. ‘내가 이렇게 한가해도 괜챦은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다. 하지만 초여름 바람은 연초록 잎사귀들을 흔들며 이런 불안마저 털어내서  풀 풀 날려 버린다.


어느 여름 가족들과 묵었던 황토마을 팬션을 지난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잠시 추억을 들추다 보면 대천동 사거리이다. 송당 방면으로 가기 위해 좌회전 깜박이를 켠다. 차로는 2차선으로 좁아지고, 추월하기 힘든 탓인지 자동차의 속도도 덩달아 느려진다. 이윽고 하늘로 곧게 뻗은 삼나무들의 기분 좋은 호위를 받는다. 이때쯤 나는 차창을 완전히 내리고 아주 깊게 숨을 들이 마신다. 내 몸 구석구석까지 원시림의 산소를 가득 채워 놓는다. 이 길을 나의 산소 충전소로 명명해 놓았다.


지구가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성일 수 있는 까닭은 나무와 풀과 꽃을 포함한 초록 식물들의 공이 아닌가.  온 힘을 다하여 지상으로는 가지와 잎사귀를 펼쳐내고, 땅 속으로는 또 그만큼의 뿌리를 뻗어 내리면서 지구를 지켜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무라는 식물이 없었다면 사막화 되어가며 미세먼지 가득한 황사바람만 만들어 냈을  중국의 카부치 사막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


삼나무 숲길이 끝나고 수산 방향으로 우회전을 할 때 쯤 이였다.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묻는다. 당신은 어떤 나무가 되고 싶은지, 어떤 나무에 비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다. 청취자들의 반응은 샘이 날정도로 기발하고 재치가 있다.


“오늘은 월요일이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구를 떠받히고 있는 바오밥나무 같아요.”


“아파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쥐방울 나무 같아요. 있는 듯 없는 듯 울타리 역할을 하는 그 나무를 닮은 듯 합니다.”


“제주에 있는 나 홀로 나무처럼 느껴져요.”


나 홀로 나무는 새별 오름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나무의 별칭인데  그 나무는  팽나무라 한다. 차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을 뿐 직접 가보지 않았으니 언젠가는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또 한 가지 늘어난 셈이다.


‘나는 무슨 나무를 닮았을까? 무슨 나무를 닮고 싶은가?’


수산 방향으로 접어들면 밭과 목초지가 펼쳐진다. 내리막길을 달려 백약이 오름을 지날 때에는 수풀 사이로, 구름 따라 유유히 자유가 흐르고 있다.


나는 이른 봄에 단아한 분홍 꽃을 피워내고 인간에게 이로운 열매도 맺는 개복숭아 나무라면 행복하겠다. 아! 5월의 귤꽃 향기는 또 얼마나 향기로운가? 제주 섬을 온통 향기로 취하게 하는 귤나무가 되어도 좋겠다. 아니다. 나무이기만 하다면 어떤 나무인들 어떠랴.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여도 사람들에게 위안과 휴식이 되니 말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은 진정한 성공을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그렇다. 그저 숲의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무라도 좋겠다. 그 숲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진다면 숲의 일부분인 그 나무의 삶도 의미 있는 삶일 수 있고 그리고 그 삶은 성공한 것이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어느새 시선 끝 간 곳에 학교가 보인다. 나로 하여 아이들이 웃을 수 있고, 아이들의 웃음으로 나또한 행복해진다면 이 또한 진정한 성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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