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너무 많으면 갚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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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옥.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사마천의 사기에 채대고축(債臺高築)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의 전국시대, 주(周)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난왕이 전쟁을 위해 돈을 빌려 출전했지만, 소득 없이 전쟁이 끝나자 돈을 빌려줬던 부호들이 궁으로 와 소란을 피웠다. 왕은 빚쟁이들을 피해 궁 안의 높은 누대에 숨어 근심과 두려움으로 지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이다. 즉, 빚이 너무 많으면 갚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한국에서도 지난 1990년대 후반, 외채를 갚을 길이 없자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IMF에 급전을 꾸어 쓰면서 국민들이 고통을 감내했던 시기에 이 사자성어를 떠올리곤 했다. 요즘 다시 이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월 발표한 통계청의 2016년 농가경제조사 결과에서 제주 농가의 가구당 부채가 6400만원 규모로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발표에 이어 7월에도 한국은행 제주본부에서 제주농가 부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농가의 부채상환 능력이 약화되는 데다가 인구 고령화, 농업 생산성 저하, 소득 불평등 심화, 기후변화 등 중·장기적인 위험요인까지 상존하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농가부채의 증가율은 심각한 수준으로 지난 5년 동안 농가부채가 연간 15.8% 증가한 반면, 농가소득은 연간 4%밖에 증가하지 못했다. 제주 농가의 어려움을 국가 주요기관들의 자료들로 재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혹자는 농가부채 문제가 각 개별농가의 채무에 해당하는 사항인 만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아무런 책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성에 기인해서 매년 740억원 규모의 농산물 물류비를 부담하고 있고,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개방농정과 FTA로 인한 수입농산물의 급증으로 인해 제주 1차 산업의 특화성이 감소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당시 FTA 등에 대응한 농업인들의 경쟁력 강화 지원 정책이 고사정책이었다고 인정하면서, 농가소득 안전망 구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향후 농가소득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에 앞서 제주농가의 안전망 구축과 농가부채 문제를 시급히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마저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7월 13일, 미국이 한·미 FTA 개정을 논의할 특별위원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미국이 상품수지 적자 해소에 집중하며 자동차와 철강, 교육 분야를 문제 삼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미국 쌀 협회는 이미 지난 5월부터 한국과 쌀 시장 개방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재협상을 통해 쌀이 수입된다면 대한민국 농업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고, 쌀 재배가 어려워진 논에서 밭작물과 시설재배로의 전환이 이뤄지면 밭작물이 99%인 제주에 상당한 피해가 우려된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농가부채 문제나 FTA 재협상에 대해서 중앙정부의 지침과 대책을 기다리는 자세로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제주 1차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FTA 재협상 문제와 같은 거시적 문제와 악화되고 있는 농가부채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갚을 수 없는 빚이 쌓이기 전에 이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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