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오고 나서 처음으로 지난달 제주를 찾았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현대식 건물들도 많아지고 길도 사통팔달이었다. 바닷가 부근은 어디를 가나 식당이나 펜션, 카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동차들도 국산뿐 아니라 외국의 유명 메이커들까지 가세해 부의 증대를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중국인들을 위한 안내판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그만큼 커졌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큰 변화였다. 제주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섬으로 거듭 났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건 시내 도로 위를 오가는 자동차들이었다. 필자의 눈으로 봤을 땐 무질서를 넘어 무법에 가까웠다. 자동차에 앉아 있는 게 불안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슬아슬한 건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였다. 자동차들이 눈치를 살피다 가로지르며 오가는 게 곡예처럼 보였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량들 속에 다짜고짜 머리를 들이미는 운전도 다반사였다. 그저 배짱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로터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머리를 먼저 내밀고 끼어들면 그만이었다. 마차를 끌던 시대에도 그런 일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운전자들을 무법자처럼 만든 건 아무래도 행정 당국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거기에 시민 의식의 부재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필자가 사는 뉴질랜드에도 로터리는 많다. 그러나 로터리를 통과할 때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좌측통행인 만큼 오른쪽에서 오는 차량이 우선이다. 한국에서라면 왼쪽에서 오는 차량이 먼저 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로터리는 대개 차량 통행이 잦지 않은 편도 1차로 도로에 만들었다가 교통량이 많아지면 신호등으로 대체되는 게 보통이다.

제주에서 또 하나 이상한 건 개인차량들이 공공도로를 밤낮없이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쪽에 늘어선 차량들 때문에 도로는 늘 외나무다리처럼 비좁았다. 도로를 나누고 있는 쇠막대 중앙분리대만큼이나 갑갑하게 느껴졌다. 소방도로는 어떻게 확보하고 앰뷸런스는 어떻게 달려야할지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길을 걸을 땐 지나가는 자동차에 쫓기는 신세가 되기 일쑤였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와 당국의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해보였다. 재원이 부족하면 관광세를 만들어서라도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지하 주차장을 만들거나 주차 타워를 세워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있는 차량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잘못된 도로도 정비하고 신호등도 세워야 한다. 비싼 아파트에 살고 고급차를 탄다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발전이라는 것도 경제지표로만 측정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정신과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관광이 주요산업인 제주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더 크다. 제주가 망가지고 있다는 한 지인의 걱정을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다. 짧은 일정을 쪼개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에 올랐을 때 그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숨 막힐 듯 갑갑한 도로도 얼마든지 잊어버릴 수 있었다. 제주를 잘 가꾸고 지키는 것은 제주 사람들의 몫이다. 훌륭한 시설과 서비스 못지않게 시민의식과 준법정신도 하나로 어우러져 힘을 보태야 한다. 그래야 제주 사람들의 삶의 질도 좋아지고 제주를 찾는 사람들도 제주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