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제주PEN클럽 회원들과 함께 연변시인협회의 초청을 받아 문학 교류 행사 차 중국 연변에 다녀왔다. 중국은 주지하다시피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졌으며 1952년 소수 민족의 자치권을 인정했다. 조선족들은 연변에 자치주를 형성하여 현재 85만이 거주하고 있다. 연길시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으나 주업이 옥수수 농사라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취직하여 나가고 주로 노인들이 많다.

다른 외국의 도시들보다 특이한 것은 상점 간판, 이정표, 도로변의 구호들이 한글을 먼저 쓰고 그 아래 또는 옆에 중국의 간자체 표기를 해 동일 민족이라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수 민족이 사는 곳은 한족들이 사는 곳보다 낙후돼 있는데 소수민족의 부흥을 원하지 않는 중국의 정책에 의해 지원을 차별화하기 때문이라 한다.

중국이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금지하기 전 특히 중국 관광객들을 모집하며 제주도에서 관광업을 하는 조선족들은 많은 부를 축적해 제주도에 빌딩과 호텔, 여러 채의 빌라를 취득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호텔, 식당이나 노래방 종업원으로 근무하면서 중국에서는 만져 볼 수 없는 돈을 안겨주는 제주는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허나 사드 배치 이후 많은 조선족들은 중국으로 돌아갔고 사태의 호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사드 배치는 조선족 사회에서도 또 하나의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었다. 관광과 무역 등 한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반대하고 문인들조차도 북한지역 출신들은 반대를, 남한 출신들은 찬성을 하고 있지만 논쟁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정치적인 이야기는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문학 교류는 ‘섬과 대륙을 잇는 문학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양쪽 단체 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디지털시대 문학의 대응양상’이라는 주제 강연 후 양쪽 시인들의 시 낭송이 있었고 상호 테이블마다 토론이 이어졌다. 이들에게 사드 배치 이후의 문단의 변화를 물었더니 대뜸 검열이 까다로워지고 조선족을 대하는 태도가 냉랭해졌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우리 문학 교류단 일행도 그런 분위기를 연길 공항에서 체감했다. 행사를 위해 만든 양 단체 회원들의 작품을 책자로 만든 작품집이 공항 통관 과정에서 트집 잡혔다.

책자는 20부 이상 가져갈 수가 없다며, 조선족 공무원이 오랜 시간 붙잡고 내용을 꼼꼼히 검토해 현지 가이드가 사정해서야 통과되는 소동을 겪었다.

연변 문인들은 작품 검열을 받으면서 백두대간, 민족, 혈통, 통일 이란 단어는 사용을 못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은유적이고 암묵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삶과 열망을 강렬하게 표현한다고 했다.

연변문인들의 작품 속에서는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디아스포라)으로서의 삶과 분단된 조국의 통일에 대한 열망 등을 담은 작품들이 많았다.

연변에는 작가협회가 있고 그 임원들은 공무원 신분이 되어 나라에서 봉급을 받는다, 산하에는 시분과, 소설분과, 산문분과(주로 논픽션), 극분과 등이 있고 장르별로 협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연변시인협회는 300여 명의 회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갈등하는 조선족의 일면을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만강 광장에서 만난 한 조선족의 언행에서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것을 대뜸 알아본 그는 우리를 붙들고 하소연했다.

“우리 아들이 한국을 넘나들며 무역을 하는데 사드 문제 이후 사업에 큰 타격을 입어 파산 직전이에요.” 그러면서 강 건너로 손가락질하며 “다 저놈들 때문이지. 미사일은 왜 쏘고 지랄을 하는지.”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가를 소매로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