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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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별명은 자칭 ‘바보’였다.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와 소년 같은 입매에선 그런 느낌이 더했다.

그런 추기경이 생전에 사회운동으로 펼친 게 1989년의 ‘내 탓이오’ 캠페인이었다. 얼마나 애정을 보였던지 자신의 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정치권은 권력다툼으로 혈안이 됐을 때였다. 여야 금배지들은 핏대 높여 “네 탓”만 외치면서 갈등을 부채질하곤 했다.

당시 추기경은 “지금은 자기반성을 실행에 옮기는 게 먼저”라며 큰 울림을 줬다. 이 운동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다. 몇 년이 흐르는 사이 137개국에서 정신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알다시피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시들해졌다. ‘내 탓’은 자취를 감추고 ‘남 탓’ 시비만 기승을 부린다.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 가난뱅이는 변명을 하고, 부자는 교훈을 찾는다고 한다. 실패를 되풀이하는 이들은 대개 핑계가 많다는 비유다. 변명거리를 챙겨두면 실패해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서란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변명을 하기 마련인가. ‘사기’를 보면 항우 같은 장수도 ‘하늘 탓’을 한다. “나는 70여 차례를 싸워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오늘 죽기로 결심했다. 이는 하늘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그래도 항우는 비겁하지는 않았다. 강동으로 물러선 뒤 후일을 도모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자결했다.

졸렬하고 가소로운 변명도 적잖았다. 유고의 독재자 밀로셰비치는 인종 청소를 “국민을 위한 정의의 실현”이라 강변했고,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메르스, 살충제 계란…. 나라의 재앙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탓’은 없고 모두가 ‘네 탓’ 투성이다.

여당은 엊그제 “살충제 계란 파동의 원인을 굳이 찾자면 이전 정부에 있다”고 했다. 야당이 현안 파악도 못 한 식약처장 해임을 요구하자 화살을 돌리려 한 게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을 때도,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을 때도 청와대는 전 정부의 시스템 탓을 했다. 심지어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자 농식품부와 식약처마저 서로 상대업무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실패는 용서해도 변명은 용서하지 말라고 한다. 살충제 계란은 그렇다 치고 다음엔 무얼까 슬슬 걱정된다. 이 정부는 잘못한 게 별로 없다고 하는데 과연 이게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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