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배려
인내와 배려
  • 제주신보
  • 승인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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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힘겨운 여름이었다. 해마다 겪는 더위에 이력이 생길 만도 한데 올 여름은 어지간했다. 육체적, 정신적인 인내의 한계가 도를 넘는다. 매일 자신을 시험하고 시험당하는 갈등을 겪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 있다.

이 더위만은 아니다. 생활 주변에서 피곤하게 하는 일들이 유독 많은 게 여름철이다. 하루에 수 번 베란다 문을 여닫는다. 저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냄새가 올라올 때마다 여닫기를 반복한다. 후각이 유별한 탓도 있지만, 그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 숨쉬기가 거북해 코를 막을 지경이다.

한편, 오죽하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담배를 끊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베란다에서 허공을 향해 ‘후’ 하고 속풀이를 하는 걸 보면, 차마 뭐라 할 수가 없다. 개인의 기호에 속한 것이다. 더구나 남자들이 답답하고 속상한 심정을 그렇게라도 풀어내야 가슴이 후련하다는데 어쩌랴. 밖으로 나가면 경쟁에 치여 사는 세상, 집이 휴식처인데….

다만, 피우는 사람이 타인을 생각하면 좋을 텐데, 배려하는 마음이 아쉽다. 한 지붕 아래 이웃으로 살면서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없고, 나로 인한 아래층의 고충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폭염 속에 이것도 나를 다스리는 기회라며 생각을 바꾸려 애쓴다. 나이 들어가며 남에게 언성 높이는 일로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웃으며 살아도 하루가 아쉬운 게 남은 삶인데, 더러 손해 봐도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부자 아닐까.

주민 간의 층간소음이며 사소한 불편으로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적지 않다. 서로 옳다고 언성을 높이고 나서, 후일 마주하면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단독 주택보다 편리하다고 선호하는 공동주택이다. 그런데 불편함보다 편리함이 더 많은 공간에서, 이웃 간의 갈등을 낳고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여차하면 법으로 해결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요즈음 걸핏하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거나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소리를 접할 때면, 꼭 그래야만 하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대화와 이해로 풀기보다 법이 앞서는 사회, 과거에 없던 풍조다. 특히 정치권에서 정확하게 확인되지도 않은 일로, 아니면 말고 식 무책임한 공방은 식상하다. 모범은커녕 신뢰감이 들지 않는 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뒷모습이라니. 국민의 시선을 겸허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말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머리 숙이는 이는 드물다. 실없는 말을 뱉어 놓고 시끄럽게 떠들다 마지못해 고개 숙이는 정치인들을 보면 나랏일이 걱정이다.

우리 사회가 타협이 실종되면서, 극도의 인내와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 대화의 단절로 가정이며 이웃, 나라 안팎이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만 급급한 한 것 같다. 웬만해선 참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 됐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각박해졌는지. 상대방에게 귀를 열고 대화로 푼다면, 구태여 법정까지 갈 필요가 없을 거다. 시비를 가리는 이웃 간에 분쟁도 줄어들 것이 아닌가. 살다 보면 참는 게 훨씬 득이 많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새벽 운동 길이다. 밤을 지낸 거리엔 담배꽁초가 너절하다. 어딜 가나 담배 공해다. 꽁초만 아니라면 거리는 한결 깨끗할 텐데, 새벽부터 묵묵히 비질을 하는 아주머니의 노고가 더 없이 고마운 아침이다. 차라리 사람이 북적대는 번화한 거리에 큼직한 재떨이 몇 개 갖다 놓으면 어떨까. 경기도 신도시에서다. 버스 정류장이나 공원에 놓인 현수막을 재활용한 쓰레기 자루가 인상적이었다. 제주에도 필요하겠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