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월정(月汀)은 친숙하다. 버스 타고 시내로 올 때면 으레 평대, 한동, 행원, 월정 하며 손꼽던 마을이다. 한라산 북동쪽 해안에 자리한 자그마한 마을. ‘달(月)’과 유난히 연이 닿아 월정을 말하려면 먼저 달부터 꺼내야 한다. ‘마을 모양이 반달 같다’라거나 ‘달이 뜨는 바닷가’라거나.

이름이 해맑듯 월정을 얘기할 때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물색을 빼놓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월정리는 이전의 순수하고 소박했던 그 마을이 아니다. 더욱이 해안 일대의 변화는 마을의 옛 모습을 눈에 담았던 사람이라면 놀라 자지러질 것이다. 여기 우뚝 저기 우뚝 괴기스럽고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솟아 있는 거야 마을 속으로 들어온 지 오랜 풍물로 친다 하자. 그것 말고도 월정 해안가의 변화는 놀랍다. 달라졌다는 말만으로는 요약되지 않는다. 상전벽해(桑田碧海)다.

해안가 순부기꽃 향기 폴폴 날리던 사구(砂丘)를 헤쳐 둘레를 넓히고 방죽을 둘러 달려드는 파도를 완충하려 공들였을 테다. 해수욕장이 열리고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월정리는 관광지로 도약하게 됐다. 몇 년 새의 일로 아마 그곳 주민들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급기야 월정리가 전파를 타. KBS 〈시사기획〉이 제목을 달았다. ‘환상의 섬, 그늘진 민낯’. 이후, 달이 머무는 곳이던 월정이 관광객에게 ‘핫 플레이스’로 불리게 됐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한 마을의 진화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은 채 내달려 왔다. 유명세를 타며 땅값이 하늘로 치솟는다. 토지공사 지가로 평방미터 당 92만원, 3년 전에 비해 11배나 상승했단다. 말이 그렇지 실제 평당 1000만원, 상가 분양은 2000만원을 넘어선 곳으로 알려진 지 오래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꼭 들르는 곳이 월정리 해변이다. 커피 한 잔에 5000원은 기본. 알려진 관광지라지만 그래도 결코 싼 게 아니다.

추석 뒷날 손주 둘을 데리고 월정 해안가를 찾았다. 한여름 피서객들로 넘칠 때 노란색 파라솔로 채워졌던 백사장이 철 지나 한적했다. 관광객들이 바닷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넘실대는 바다에 시선이 가 있고, 바지 올린 아이 몇이 모래 위로 밀려오는 파도를 넘는 게 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데서 어른의 눈길이 아이들을 지키고 있으리라.

‘빵 굽는 라블’에서 마실 것과 케이크 몇 조각 사들고 빈자리를 찾아 나앉는다. “저기 보세요. 저것들 펭귄 같아요.” 손녀가 가리키는 바닷가에 검은 고무 옷을 입은 윈드서퍼 30여 명이 몰려 있다. 파도를 타다 쓸리고 쓸렸다 다시 일어나 내달리고.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해도 모험을 즐기는 모습이 경쾌하다.

월정 해안은 현대식 건물들로 빼곡하다. 아직 슬레이트 지붕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긴 하나 내 보기엔 과거와 현재, 신구(新舊)의 공존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성싶다.

거닐다 띄엄띄엄 앉힌 돌에 걸터앉아 해안을 둘러본다. 펜션, 카페, 식당, 커피숍 간판들로 에워싸인 해변. 지금 이 마을은 분명 옛날의 그 마을이 아니다. 예전엔 모래바람에 눈뜨지 못하던 곳이라 값도 제대로 쳐 주지 않던 바닷가, 이젠 돈바람이 불고 있지 않나. 외지인들에게 호락호락 땅을 내줘 버린 주민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디쯤일까.

한가위 뒷날 바닷가 마을 월정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월정 해안에 부는 바람은 비릿한 갯바람이 아니다. 밖에서 불어오는 돈바람이다.

밤이면 월정 해안에도 달이 뜰까. 뜰 것이다. 그러나 고요하던 옛날의 그 달은 아닐 것 같다. 돌아서는데 등 뒤로 왁자지껄 무리 지어 지나는 소리….

친숙하던 월정 마을이 갑자기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