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베트올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정미 배트올㈜ 사장.

김정미 베트올 사장(53)은 자신을 철저한 마이너리티(minority·소수자) 출신이라고 말한다.


제주도라는 섬에서 남자도 아닌 여자로 태어나 그 누구의 기대나 관심도 받지 않았던 마이너리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으며, 국립보건원 연구사를 거쳐 벤처기업과 대기업에서 일하며 혼신을 다한 연구와 제품 개발로 질병 진단 분야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동물 질병 진단 분야에서 세계 NO.1의 기업을 꿈꾸는 김 사장의 미래가 주목되는 이유다.

 

▲공무원에서 벤처기업으로 진로를 바꾸다


김 사장이 1997년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직 공무원으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은 미국의 명문대 MIT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였다.


당시 국립보건원이 해외 박사 출신 인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그녀와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공직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그녀의 공무원 생활은 3년 3개월 만에 끝이 났다.


2000년도, IMF 여파로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때였지만 바이오 벤처기업에서 연구소장 제의가 들어오자 그녀는 안정된 생활을 마다하고 과감하게 진로를 변경했다.


“남편과 의논을 했는데 힘을 실어줘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며 “제가 가장이고 남자였다면 그대로 공무원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 사장은 “벤처기업에서의 2년이 가장 많은 연구와 개발을 한 시기였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고난도의 문제를 해결하며 연구에 재미를 느꼈고 실적도 좋았다”는 그녀는 “그 때 유전자칩 기술을 이용해 자궁경부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고 소개했다.


이 자궁경부암 진단키트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기관(식약청)에서 처음 허가한 제품이다.


결핵, 성병, 유전자 질환, 장 바이러스 등 인체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제품들도 개발했다.


제품개발자로서 병·의원 등 거래처는 물론 세미나, 해외 학회 등에서 제품 설명을 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대기업인 이수화학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대기업 시스템에서 일을 하면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아 회사를 옮긴 그녀는 이 곳에서 5년 동안 소위 ‘소사장’ 역할을 하며 5년 동안 질병진단사업을 총괄했다.

 

   
▲ 김정미 베트올㈜ 사장이 2012년 12월 5일 제49회 무역의 날을 맞아 코엑스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백만불 수출 탑을 받았다.

▲베트올(주)를 창립하다


김 사장은 베트올(주)을 창립 동기와 관련, “대기업에서 질병진단사업을 전담하다보니 어느 순간 독립해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인체 진단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작지만 새롭게 뜰 수 있는 틈새 시장을 겨냥해 동물 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베트올을 창립할 때부터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이상돼야 반려동물 시장이 형성되고 3만 달러 이상이면 반려동물이 사람과 비슷한 대우를 받게 된다”며 “진단 기술과 제품 판매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베트올의 동물진단키트는 수의사들이 쓰는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생소하지만 2008년 지식경제부는 차세대 세계일류상품과 차세대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으로 선정했다.


그녀는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 해외 전시회 등을 가더라도 베트올에서 생산한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올 제품이 수출되는 해외 국가는 현재 112개 국으로 수출 시장 규모는 일본, 중국, 유럽, 아시아 국가 순이다.


그녀는 제품 수출에 있어 가장 큰 애로점은 인·허가 시간을 꼽았다.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도 힘들지만 수출 대상 국가마다 인·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는데 소요 기간이 만만찮다”며 “일본은 1년 2개월, 브라질은 3년 3개월이 소요됐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래전 상용화된 아스피린이나 임신진단키트 등이 아직도 광범위하게 쓰이듯이 베트올에서 개발한 제품들도 충분히 검증이 이뤄지면 장기간 존속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베트올이 갖고 있는 기술력을 이용, 어류나 농산물, 환경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려동물 진단 외에 다른 분야로 확대하는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동물 질병 진단키트란 무엇인가


김 사장은 “동물 질병 진단키트는 임신 진단키트와 같은 원리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샘플 안에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는 항체 또는 항원을 심어놔서 양성인지 음성인지 반응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트올에서 생산하는 동물 질병 진단키트는 개의 심장사상충, 홍역, 파보바이러스(장염), 코로나 바이러스, 고양이의 백혈병이나 면역결핍증 등을 검사하는 제품들이 주력 상품이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의약품들은 앞으로 개발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그녀는 “지금까지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 연구에 집중했는데 향후 만성질환 등 비감염질환으로 제품 개발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도 혈압, 당뇨병, 관절염 등의 만성질환을 앓기 때문에 성견과 노령견 등의 질병 진단을 위한 제품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 2008년 12월 12일 지식경제부로부터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 및 생산기업으로 선정돼 코엑스에서 인증서를 받고있는 김정미 사장.

▲여성 벤처기업인, 그리고 워킹맘으로서 애로점은


김 사장은 “국내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려면 술도 마시고 골프도 치면서 로비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하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남성 위주의 연대감이 강하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은 그녀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 중 하나가 됐다.


“해외 바이어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기술이 먼저”라고 밝힌 그녀는 “베트올도 기술 기반의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또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의 양립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정의를 내렸다.


“자녀와 가정을 가진 엄마로서 일을 하려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자녀, 가족들에게 서로 조금씩 도우면서 생활하자고 설득을 했다.


“현모양처를 원했던 남편도 처음에는 말렸지만 지금은 많이 도와줘 큰 힘이 된다”고 웃었다.

 

▲여성 기업인을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


김 사장의 첫마디는 “너무 서둘지 말라”였다.


“일단 창업부터 하고 나서 해보다가 시행착오를 겪어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지 하는 것보다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후 자신감이 생길 때 창업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없으면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없다”고도 했다.


“제가 43세에 창업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벤처기업이나 대기업 등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충분히 경험을 쌓았고 혼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특히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만일 월급을 제때 못 준다면 직원과 그 가족들까지 수백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생각에 두려워지기도 한다”며 회사 경영이 쉽지 않음을 에둘러 말했다.


충분히 사전 시뮬레이션을 해본 후 창업을 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학업 과정과 가족 관계


김 사장은 제주시 삼도2동에서 태어나 제주남초와 제주여중,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중앙여고 2회 졸업생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설된 지 2년 밖에 안 된 여고를 다니면서 당시 180여 명의 학생 중 10 밖에 안 되는 자연계를 택했다.


이화여대 생물학과를 수석으로 합격한 그녀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역학을 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남편이 유학 중이던 미국으로 갔다가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약리·독성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남편을 설득한 끝에 출산 후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힘겨운 노력의 결과였다.


그 후 그녀는 2년 동안 MIT에서 박사 후 연구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


가족으로는 경희대 문리대 학장인 남편 정용석 교수(57)와 두 딸이 있다.

 

▲고향 제주의 의미와 제주 미래 발전에 대한 의견


그녀에게 있어 제주의 의미는 남달랐다.


“따뜻한 고향이면서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꿈을 키워준 인큐베이터’와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녀는 “제주가 섬이라는 지리적·환경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해 생활 여건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큰 곳으로 나가고 싶은 호기심과 꿈을 갖게 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또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제주에서 태어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예’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에게 강인한 제주 여성의 DNA가 내재돼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스스로 느낀다고 했다.


제주 미래 발전과 관련, 그녀는 “인재를 키우고 잘 활용했으면 한다”며 “제주 출신 인재들을 인적 네크워크화 해서 제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