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인류의 스승이다
공자는 인류의 스승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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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21C제주유교문화발전연구원장/수필가

유학사상은 공자의 인간 중심 사상이다. 자연을 중시하는 도가사상이나 일반 종교와는 성질이 다르다. 유교에서는 내세관이나 천당과 지옥을 말하지 않으며 유교를 믿으라고 권유하지도 않는다.

공자의 제자 계로가 죽음에 대하여 물었다. 이에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 즉, 미지생언지사(未知生焉知死)라고 했다.

유교의 종주국 중국에서는 유교문화가 몇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60년대 이른바 중국의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젊은 홍위병들은 공자 관련한 유적유물을 대거 폐기시켜 버렸다. 개혁 개방과 경제 발전에 역행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하다가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공자는 교육자로 복권됐고 공자유적지도 복원시키는 등 상황이 크게 호전됐다.

또한 유교사상의 말살은 사회분열과 통치이념의 구심점을 상실했다. 2500여 년 동안 유교사상에 젖어 있는 중국의 국민 정서를 재조명한 것은 당연지사였는지 모른다. 등소평, 장쩌민, 후진타오, 현재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동안에 세계 G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유교사상의 힘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유교문화는 반만년 대륙에 접해 있고 빈번한 왜구의 침범, 일제 강점기 등을 겪으면서도 고유의 전통과 문화, 풍습, 언어 등에서 비교적 유교의 맥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근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어느 기인의 책이 출간되면서 다소간 시비가 일었다. 이 책에서는 남녀불평등, 가부장제도, 상관 접대 사고방식은 부정부패의 근원이라는 시각, 젊음과 창의성 말살, 사공농상(士工農商)으로 대표되는 신흥사회, 효 사상은 복지제도의 걸림돌로 보았고, 제례문화는 사치풍조를 조성한다고 부추겼다.

다만 삼강오륜과 같은 상하 간 신분 질서, 여성비하 사유 등은 봉건 잔재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유교의 근본정신을 전반적으로 부정해 전국유림사회로부터 혹독한 지탄을 받았다.

시대가 변했다. 세계는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는 시대,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인류문화의 방향 제시가 자연스레 뒤따라야 할 때가 왔다.

동남아 일대는 유교권 국가다.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 대부분 놀라운 경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유교문화의 가치다.

서구적 물질만능주의 극단적 이기주의에 의한 이윤 추구에 몰입한 결과 인간성 상실, 윤리의식 부재, 공동체의식 결여를 불러 왔다. 한강의 기적을 뛰어넘어 베트남을 비롯한 유교문화권 국가들의 경제 발전은 유교 철학의 결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교사상의 바탕, 가족주의, 가부장제도, 높은 교육열, 근면, 성실, 공동체의식, 도덕과 윤리를 중시하는 사회의식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다.

세계의 석학들은 공자가 강조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에서 그 답을 찾았는지 모른다. 사리에 맞고 인간의 존엄성을 높일 수 있는 기업정신이 우선이라는 것. 유교문화와 서양의 자본주의의 결합체로 인식되는 유교자본주의라는 신경제술어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논어는 세계 3대 경전의 하나다. 유교의 경전, 논어 제1편 첫머리에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呼),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유교무류(有敎無類), “배움에는 귀천이 따로 없다”라고 설파했다. 그 시대 교육 대상이 귀족이었음에 비추어볼 때 혁명적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공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랜 교육자이다. 아스라이 훗날을 내다보면서 군자 같은 인재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기를 기대했으리라.

과연 공자는 인류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