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지 않아 참 다행이다
너무 늦지 않아 참 다행이다
  • 제주신보
  • 승인 2017.11.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엄마가 계실 때 자주 보고 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라고 전하는 친구의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전화만 하면 항상 들을 수 있었던 서울 엄마의 목소리. 어느 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고 그 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내가 미웠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평상시 서울이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제주에서 서울이 너무나 멀기만 했다.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섬 사람의 비애(悲哀)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은 30분간 2명만이 면회가 가능했다. 나는 엄마를 매일 볼 수 없는 것에 힘들어 하며 격주로 서울을 왕래하였다.

넉 달 정도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다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참 좋다. 엄마의 몸 곳곳에 자극을 주었을 때 인상을 쓰고, 아프다고 소리치는 목소리와 몸짓에도 나는 행복했다. 한없이 눈물짓던 내 시간들도 이제는 아픔을 느끼고 있는 당신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

그동안 부모님의 삶의 변화에 무덤덤하게 반응했던 내 시간들의 철없음을 반성해 본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무수한 시간을 당신보다는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했다. 당신의 편안함보다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육체의 고단함을 말하는 것조차도 한낱 사치라 여겼던 부모님. 엄마의 입원은 ‘孝’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멀지 않은 옛날, 어버이날이면 당연히 불렀던 노래다. 의식하지 않고 관습에 따라했던 어버이날 노래. 그냥 무심코 불렀던 어버이날 노래가 지금은 나의 노래가 되어 뜨겁게 가슴을 울린다.

우리에게는 어버이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 노인의 날 등 많은 기념일들이 있다. 그날은 주인공을 위해 다양한 행사들이 이루어진다. 진정하게 그들을 위하여 기억해주고 기뻐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시장의 과도한 상술이나 편의에 따라 기념일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소홀함을 물질로 상쇄하려는 행동에 주인공들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숙고함이 없다.

효는 마음에서 느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방법으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니까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에 자주 빠진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인데도 말이다. 인생에서 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정녕 주고자 하나 상대가 없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뵙는 것이 효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제사상에 좋은 음식을 차려 위안을 삼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작 그 분들이 모르시는 것을.

격주지만 서울에 갈 때마다 엄마는 ‘힘들게 왜왔냐’고 타박을 하면서도 은근히 ‘오면 나야 좋지’ 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엄마’다. 내가 엄마께 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지금 할머니한테 엄마가 한 대로 해주면 되지”라고 말하며, 그동안 울고 웃었던 나의 모습을 흉내 낸다.

지난번 헤어지는 날 나도 모르게 “엄마~ 많이 사랑해”라고 말하니 엄마는 “그래 나도 사랑해”라고 하신다. 마음속으로만 수 십 년 동안 생각했던 말을 표현한 날이다. 행복하다, 그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늦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