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잔옥대
금잔옥대
  • 제주신보
  • 승인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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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미/수필가

수선화를 금잔옥대라고도 부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흰색의 여섯 닢, 그 가운데 노란색의 금잔 같은 것이 달려있다. 그 안에 암술, 수술이 있다. 기다란 꽃대, 잎사귀마저도 가녀리다. 겨울이면 세찬 바람 속에 돌담을 의지하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칼바람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초연하다.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꽃송이가 피어있다. 같이 추위를 견딜 수 있으니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쩌다 꽃대 위에 홀로 핀 꽃은 무리 속에서도 돋보인다. 혹한에도 웃는 꽃, 바람과 더불어 춤을 추는 꽃이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차를 즐기는 친구 집에 마실을 갔다가 마당에 널려있는 금잔옥대를 만났다. 지천이 꽃이다. 안부를 묻곤 하는 꽃이기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몇 포기 캐달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리운 이가 있었는가. 곁에 두면 그리움이 덜할까. 우리 집 마당으로 옮겨 심었다.


거처를 옮긴 꽃은 내 그리움에 잘 화답해 주어 겨울이면 영롱한 얼굴로 마주한다.


눈 속에서도 꽃은 핀다. 겨우내 꽃이 피기를 고대하며 이제나저제나 꽃대가 올라오는지, 꽃망울이 맺혔는지 쪼그려 앉아서 가만히 응시하곤 한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다. 꼭 꽃을 피우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기다림이 길어도 서운하지는 않다. 기다리고 기다린 덕에 드디어 승전보를 전해준다.


김영갑 갤러리를 간다. 그곳에 가면 금잔옥대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눈 속을 뚫고 피어나 강인하게 겨울을 견디는 꽃을 본 적이 있다. 그 강인함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았던가.
출입구를 들어서는데 바람도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금잔옥대를 만난다. 똘망한 얼굴을 보여주어 내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든다.
어디에서 왔을까. 무엇 때문에 피었을까. 이 정경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눈에 밟혀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는다. 지인들에게도 보내주고, 어느 날 문득 동영상에 찍힌 이 겨울을 추억하리라.


갤러리 안은 따스하다. 생전에 작가의 모습을 비디오로 만날 수 있다. 바람 속에서 찰나를 포착하려 버티고 있는 그가 보인다. 카메라 하나를 들고 치열하게 살아내던 그다. 생전에 모습 그대로 생생하다.
그가 떠난 이곳, 굳어버린 근육의 무게만큼 아픔을 품고 있는 사진들이 있다. 그 아픔 때문일까. 사진 한 점 한 점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그가 가르쳐 주는 기다림의 미학. 피사체를 향한 그의 도전은 처절한 투쟁이었다.
해가 뜨면 카메라를 메고 떠돌다, 한 곳을 응시하고 서 있어야만 하는 그에게 신은 찰나의 위대함을 보여 주었다. 오래 기다린 자의 승리다.


언젠가 갤러리에서 만난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진을 구매하고 간 사람들이 사진 대금을 입금해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였다. 루게릭병 때문에 말조차도 어눌해졌지만, 그 내용은 또렷하게 들려 왔다. 병보다 더 깊은 상처로 씁쓸해하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잠시 그를 추억하다 갤러리를 나오는데 거센 바람 속에 서 있는 금잔옥대 무리를 다시 만난다. 목도리를 단단히 여미며 목을 움츠리는데 꽃들은 주인을 애도하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바람이 무색게 경건한 자세다. 겨울을 견디는 저 무리 속에 문득 그가 서 있는 것만 같다. 꽃처럼 그는 영원히 피어날 것이다. 한 다발의 금잔옥대를 그의 영정에 바치고 싶다.


바람에 주체못해 쓰러진 꽃이 보인다. 가늘고 긴 허리가 꺾여서 그냥 두면 누워있는 채로 시들어 버릴 것이다. 안쓰럽다. 누워있는 꽃을 어떻게 소생시킬까, 중환자실로 옮겨 심폐소생술이라도 시켜야 할 상황이다. 수술실 의사가 메스를 대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쓰러진 꽃을 자른다. 나를 살게 하는 꽃이기에 꼭 살려내야만 한다.

 

화병에 꽂아둔 꽃은 며칠이 지나도 싱싱하다. 나는 금잔옥대를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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