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704-1004’
‘060-704-1004’
  • 김용환
  • 승인 200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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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개인전이 불과 한 달 앞인데 집중이 안 되고 정서가 불안해서 도무지 붓을 잡을 수가 없다. 이제 작업 마무리 초읽기에 들어갈 시간인데 더욱더 안 되는 이유가 대구 중앙역 지하철 화마의 지옥 같은 시커먼 연기가 바다건너 제주도에 있는 나의 머릿속과 폐부에 깊이 들이박히고, 그것도 모자라서 온몸을 휘감고 도무지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러잖아도 작품 하나를 완성하려면 온몸이 뼛속까지 녹아내려 물이 되어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천의 온갖 굉음이 들려 밤에 잠을 잘 때는 아내 옆에도 못 가는데….

단란한 저녁식사. 온 가족이라야 아내와 딸 하나 세 식구, 그런 대로 항상 즐거웠는데 사고를 당한 가족들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지 몇 수저 뜨다 말고 각자 방으로 말없이 들어가 거실은 텅 비고 집안 분위기가 썰렁하다.

우리 집도 이러할 진데… 이웃집도 이러할 진데… 나라 전체가 암울한 기운이…. 그 누구보다도 막상 당한 사람들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너무 아프고 깊게 파인 상처의 한을 안고 어찌 살아가야 할꼬…. 오!!! 주기적으로 시간표 짜놓고 일어나는 것 같은 대형참사여!!!

이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의 정서는 무뎌지고 황폐해져 가는데…. 온 국민이 전쟁 때나 집단적으로 겪는 이런 스트레스는 또 세월이 약일 수밖에 없단 말인가…. 망각이라는 천연의 약에 의존해서… 그런 대로 시간을 죽이며… 상처가 너무 깊어 치유는 안 되겠지만…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또 기다려야만 한다는 말인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배가 사고를 당해서 침몰하는 장면에서 선장은 마지막까지 배의 키를 잡고 끝까지 배와 함께 가라앉으며 장엄하게 죽는 모습에서 우리는 숭고하고 엄숙한 비장미를 느낀다. 비단 영화 속에서뿐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실화로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런 걸로 보면 이번 사고의 얼빠진 지하철공사 관계자들의 어벙한 대처방식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이번 사고에 물론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많은 인명을 구해낸 영웅들도 많다고 전해진다. 사고의 충격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영웅들의 미담도 방송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사고 당사자나 더욱 가슴 아플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위안이 되는 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하루빨리 충격과 슬픔에서 회복될 수 있게 도와야 하겠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주기적인 대형사고,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한꺼번에 바로잡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강력하게 마련됐으면 좋겠다. 여느 민족과 달리 우리 민족처럼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섬세한 문화를 이룩한 민족이 또 어디 있었단 말인가! 조상들의 빛나는 얼과 함께 탄탄한 정신적 기반 위에 이룩해 놓은 모든 것들이 현대에 와서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060-704-1004’.

이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시피 요새 TV 화면 왼쪽 위에 항상 떠있는 성금모금 전화번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 통화에 2000원밖에 안되지만 온 국민이 한 통화씩 꼭 해준다면 이것이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이다. 이미 예전에 금 모으기로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기적의 민족 아닌가! 근간에 유행하는 로또복권도 2000원이다. 형체 없는 뜬구름 잡기 대박의 꿈보다도 이런 일에 쓰면 더욱더 복 받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고의 충격으로 입맛도 없을 텐데 점심 한 끼 거르고 전화 한 통 해도 좋을 듯하다. 그래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숙한 마음으로 정성을 깃들인 사랑의 전화 한 통이 값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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