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팟 사랑
우영팟 사랑
  • 제주신보
  • 승인 2018.01.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영식 수필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소싯적에 일들이 아련하다.


어머니가 밭에 가는 날이면 동생을 돌보러 나는 밭에 가야만했다. 어머니는 동이 트면 일어나 새벽밥을 하고, 단잠을 자는 나를 깨워 아침밥을 먹게 했다.

 

채롱에 점심밥을 담고 보자기에 싸서 짊어지고 1㎞쯤 걸어가면 두 갈래의 갈림길이다. 어느 쪽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그 날에 재수가 갈린다.


하루는 먼 밭으로 가면 다리가 아프니 가까운 밭으로 가자고 했다. 어머니는 “오늘은 가까운 밭이 아니고 먼 밭으로 가야한다.” 해도 내가 가까운 밭으로 가면 내 뒤를 따라와 주리라 믿었다.

 

앞장서서 부지런히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먼 밭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그쪽으로 가면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거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애기구덕을 지고, 손에는 반찬통을 들고 인정사정없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먼 밭길을 계속 걸어갔다. 뒷모습이 보일 듯 말듯 먼발치에서 따라가며 밭에 다 갈 때까지 투정을 부렸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어른이 되면 가까운 곳에 농장을 만들어 밭에 가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이제 60년 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 때의 꿈이 조금은 이루어진 것 같다. 집 바로 옆에 조그마한 농장이 있다.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고,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거리이다. 아마도 어릴 때에 어머니와 그런 추억이 없었더라면 우영팟 농장은 마련치 못하였을 것이다.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흙과 더불어 사는 삶이 좋아서 지금까지도 겸업으로 하우스농사를 짓고 있다.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일에 매진한다.


10여 년 전에 집 옆에 과수원을 매입하여 밀감나무를 베어내어 고접갱신을 하였다. 천혜향을 접목하여 하우스 짓고, 구석 자투리땅에 텃밭을 만들었다. 좁쌀만 한 씨앗을 뿌리면 새싹이 솟아나고, 씨앗 하나에서 수십 개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세상에 모든 만물이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 나 또한 우주의 아주 작은 미물에 불과한 존재임을 배운다.


시도 때도 없이 농장에 자주 출입을 하다가 보니 땅이 굳어져서 천혜향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밭 중앙으로 콘크리트 포장을 하여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니 땅을 덜 밟게 되고, 미생물 번식도 왕성하여 나무도 잘 자란다.


얼마 전 지인이 우연히 호텔바닥에 깔았던 카펫을 새 것으로 교체하면서 걷어낸 카펫을 농장 통로에 가져다가 깔았다. 슬리퍼나 구두를 신고 걸어 다녀도 신발창이 깨끗하다.

 

농원에 견학을 온 사람들은 하우스 안길을 걸으며 마치 호텔 로비를 걷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매일 이 길을 걸으며 호텔 로비를 걷는 기분으로 걸어 다닌다며 웃었다.


오늘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농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환하게 비춰주는 달빛의 안내를 받으며 아내와 나는 카펫 길을 따라 걸어간다. 여름에 고생하며 키워온 열매들의 수확을 앞두고 열매들을 바라보면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지난번 할머니 제사 때 어머니가 우영팟 구경을 했다. 카펫 길을 걸으며
“어머니!”
“이젠 우영팟이 농장이난 먼 밭디 안가도 됨수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통로를 한참 걷다가
“게메, 느 두린 때, 먼 밭디만 가가민 다리 아프댄 허멍 하도 울엉게 마는….”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저물어가는 석양의 그림자가 어머니 뒤로 붉게 물들어간다.


 
우영팟 : 텃밭. 채롱: 대나무로 만든 밥통. 가가민 : 가려면. 밭디 : 밭에.  아프댄 : 아프다면서. 느 : 너. ㅤ됨수다 : 되고 있습니다. 허멍 : 하면서.  두린 때 : 어릴 때. 게메 : 글쎄(그러게).  울엉게 마는 : 울더니만. 하도 : 그렇게.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