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쓰라린 선택
오키나와의 쓰라린 선택
  • 제주신보
  • 승인 201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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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 리쓰메이칸대학 국제관계학부 특임교수
지난 4일, 오키나와현 나고시(名護市) 시장 선거가 치러졌다. 나고시 인구는 6만명 남짓으로 1741개나 되는 기초자치단체(市區町村)의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고시에는 후텐마(普天間)기지 이설예정지로 그 찬반을 둘러싸고 20년 이상이나 갈등을 겪어온 헤노코(邊野古)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조그마한 도시 주민들이 일본 정치의 행방,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안보 상황을 좌우할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냉전기 오키나와는 서태평양지역 미국의 전략거점으로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되찾은 일본으로부터 분리되면서, 미국의 배타적인 관할권 아래 놓이게 됐다. 1972년에 시정권(施政權)이 일본에 반환됐어도 오키나와가 짊어야 할 군사전략상의 부담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비무장·평화를 내세운 헌법 체계와 미일 안보조약을 주축으로 하는 안보 관련 법체계의 2원적인 법 체제 아래 있었다. 오키나와는 이런 2원적인 법 체제의 모순을 한 몸에 짊어야 할 존재였다. 2차 대전 직후 일본은 참담한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반전·평화의 기운이 넘쳤고, 1960년의 안보투쟁은 평화주의의 이념이 널리 국민적으로 정착됨을 보여주었다. 같은 시기에는 치열한 군사기지반대 투쟁이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면서 미국은 일본 본토에 주둔한 미군의 축소·정비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일본 본토에서 쫓겨 나온 미군이나 기지 부담의 대부분은 오키나와나, 군사정권 하의 한국에 전가됐다. 동아시아 냉전의 틀 안에서는 일본 본토 군사화의 차질은 오키나와나 한국의 군사화에 귀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의 약 75%가 일본 국토의 불과 0.6%인 오키나와에 집중돼 있는 상황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었다.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면적의 약 10%을 차지하면서 주민들은 늘 군용기의 소음이나 추락 사고의 위험, 미국 병사들이 저지를 범죄 위험에 떨어야 했다.

시가지에 인접한 기노완시(宜野灣市) 후텐마기지는 그런 오키나와 주민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기지이다. 1995년의 오키나와 미국 병사의 소녀 강간폭행 사건을 계기로 후텐마기지 반환 요구가 거세지면서 우여곡절 끝에 헤노코 이설이 확정됐고, 지난해 4월에는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헤노코 해안의 매립 공사가 착수됐다.

위에서 언급한 2원적 법체계의 모순을 사실상 안보체계에 일원화함으로써 해소하려는 아베 정권에게 오키나와 주민의 반기지운동은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나고시장 선거는 아베 정권이 오키나와 주민을 공략하고 미군 기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의 시금석이 될 만한 선거였던 것이다. 자민당이 국정선거 수준의 총력전을 벌인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선거 결과는 기지 추진파인 도구치 다케토요(渡具知武豊) 후보가 반대파 현직 시장인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도구치 후보가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한 지역 경제의 부흥을 호소한 것, 그리고 기지반대 입장에 섰던 공명당이 이번에는 집권 여당으로서 도구치 후보 지지로 돌아선 것이 결과를 좌우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고시 주민들이 기지수용을 용인한 것은 아니다. 도구치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기지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했고, 현지 신문이 실시한 출구 조사에 따르면 투표한 유권자의 61.7%가 기지 이전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오키나와는 11월에 지사 선거를 비롯해서 17개 기초단체장 선거와 30개 의원선거가 이어진다. 오키나와 주민의 선택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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