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느린 아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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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 제주대 교수 교육학 전공/논설위원
치매에 대한 영화 3편을 집사람과 함께 보았다. 우선 ‘노트북(The Notebook, 2004)’이었다. 치매에 걸린 부인을 위해 노트북에 적힌 젊은 날의 기록을 남편이 읽어주는 형식의 애잔한 영화였다. 내친 김에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 2006)’도 보았다. 치매에 걸려 요양소로 간 아내가 남편을 못 알아보고 요양소에서 만난 환자를 사랑하는 것을 지켜보는 남자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러나 치매의 현실은 애잔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래서 노부부의 병과 간호,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아무르(AMOUR, 2012)’라는 영화가 솔직한지 모른다. 이 영화는 많이 불편했다. 병든 아내를 남편이 죽이는 장면만은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현실인 걸 어쩌랴. 이 3편의 영화를 본 후 우리 부부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나는 새벽 요가와 사우나를 마치고 돌아와 마루 한 편의 다실에서 집사람과 매일 차를 마신다. 꽤나 오래된 습관으로 보통 1시간이 넘는 우리만의 통과의례다. 경험해보니 부부만의 시간을 오래가질 수 있는 거로는 차만한 게 없는 듯했다. 즐겨 마시는 보이차는 연변대학에 있는 제자가 늘 보내줘 부부의 호사를 고맙게 도와준다.

그런데 차를 마시면서 할 말이 없으면 신문을 보거나 언젠가 부터 각자 스마트폰을 뒤지곤 하는데 사실 별로 좋은 풍경은 아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찻상을 두고 마주한 부부가 각자 스마트폰을 뒤지는 기이한 풍경을. 그러다 영화를 보고나서부터 나는 집사람에게 시를 읽어 주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노트를 읽어주는 영화의 장면이 인상 깊었던 탓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러 시집에서 두세 편을 골라 천천히 읽어주고, 그러다 또 차를 마시면서 아침의 시간을 길게 그리고 느리게 보낸다. 시를 읽어주면 집사람은 다소곳 귀를 기울인다. 60대에는 이혼하자고 협박하지 않는 마누라가 최고라던데 남편이 읽어주는 시까지 가만 들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시를 읽고 있으면 평소에도 말이 없는 집사람이지만 더더욱 조용해진다. 차에 취했는지, 시에 취했는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남편의 목소리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양 볼만 발그레 물이 든다. 시를 읽는 동안 나 역시 피가 맑아지고 머리가 투명해진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어떤 나무 아래 있는지, 우리의 하늘과 땅이 보이고 우리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만일 집사람이 치매에 걸린다 하더라도 시를 읽어 주기만 하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은 다만 영화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았다.

시를 읽어주면서 나는 내가 시를 쓴 지 꽤 되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시집 ‘귀한 매혹’(문학과지성사, 2008)을 출간하고 난 후 내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라갔다. 시인 김수영이 말했듯이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시인이라고 하면서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하는 나야말로 치매 환자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시를 읽어주면서 나 역시 뜻하지 않게 원기를 회복하게 되었다, 시의 병을 시로써 고치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새 시집이 출간되면 가장 먼저 집사람에게 내 시를 읽어주겠지만 당분간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골라 읽어주려고 한다. 내일은 누구의 시를 읽어주면 좋을까. 제주유배인들의 한시(漢詩)는 어떨까.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이렇게 시 때문에 아침의 길고 느린 시간들이 고맙게 기다려진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오늘은 남편이 어떤 시를 읽어주시려나 집사람도 아침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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