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대
이방인의 시대
  • 제주신보
  • 승인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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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파리를 여행했을 때 몽마르뜨언덕에 오른 기억이 떠오른다. 별로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파리 전경이 아름답게 한눈에 들었다. 거리에는 온갖 부류의 이방인들이 복작였다. 원래는 시골 마을이었는데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이방인 지역으로 변한 곳이다. 고흐나 피카소 같은 걸출한 화가들이 가난한 시절 열정을 사르던 곳이기도 하다.

이방인은 다른 곳에서 들어와 낯선 곳에 정을 붙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중세 유럽의 집시들이나 음유시인, 조선시대의 보부상이나 풍류시인들, 세계를 떠돌던 유태인이나 해방 후 일거리를 찾아 조국을 등진 우리 동포들도 이방인이었다.

근세에 들어서는 산업화나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농촌에서 도시로, 다시 도시에서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또 전쟁 난민, 취업이나 국제결혼, 유학, 여행 등의 이유로 이방인들의 이동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세계는 이제 이방인 시대다.

제주는 머잖아 이방인들의 수가 토박이를 앞지를 정도로 인구 유입이 가파르다. 외국인을 비롯해서 예술가나 연예인, 귀농·귀촌인, 노후 생활이나 사업을 위해 들어오는 이들, 무작정 왔다가 머무는 사람들까지.

그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의 문양이 새겨진다. 외국인 거주지나 작가의 마을, 화가의 거리나 음악동네…. 이런 공간들이 생긴다면 자연스레 파리의 몽마르뜨언덕 같은 이방인 지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방인은 이곳에 이주해 왔지만 지난 삶의 타성을 관성처럼 지니고 살아간다. 이곳 사람이면서 저곳 사람이다. 지역의 의례나 체면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택한다. 각자 또는 끼리끼리 도생하는 이방인 문화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런 색다름이 서로 간의 간극일수도 있다. 그런 간극을 매워주기 위해서도 서로가 뒤섞여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소통의 장소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이방인들은 지역에 대한 호기심도 남다르다. 이방인이 늘어날수록 삶의 공간은 유동성이 높아지고 시끌벅적해진다. 활기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소란이다. 자연스레 지역 경제도 활기를 띤다. 반면 아늑한 삶의 공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어떻든 제주는 이제 올망졸망 따로따로 모여 살던 마을들이 하나의 삶의 공간처럼 융·복합되며 얽혀간다. 단조롭던 삶의 모습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른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삶의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듯 거주지역의 확장으로 기존의 삶의 터전들은 그 흔적이 사라진다. 내 삶의 내력을 품어 안은 추억의 공간들까지. 그걸 최소화하려면 제주의 자연 경관뿐 아니라 제주 특유의 전통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제주다움을 지키려는 저마다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모든 걸 반듯하게 뜯어고치는 것 못잖게 꼬불꼬불한 돌담과 거리에 묻어 있는 낡고 후진 삶의 흔적들도 보호해야 할 소중한 불편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제주 사랑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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