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正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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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중 논설위원
그 옛날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부터 하겠다”고 했다. 즉 실제에 부합하는 이름을 찾는 ‘정명’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의 정명사상은 널리 회자되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에서 잘 드러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그것이다. 각자 제자리에서 이름값을 하자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권력자들은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그걸 정의로 이름 붙이곤 한다. 마땅히 잘못된 이름과 용어는 개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나아가 사회·국가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곧 명칭과 역할 등의 성격 규정을 바로 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시민들이 따르는 정치로 이어진다는 뜻이리라.

▲우리의 근현대사에도 정명을 얻으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았다. 동학농민운동은 동학난과 동학혁명을 거쳐 1990년대부터 동학농민운동으로 불린다. 동학이라는 종교집단의 반란쯤으로 치부되다 외세에 맞선 민중항쟁의 성격이 조명되면서 100여년 만에 정명을 얻었다.

5·18 광주민주항쟁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5·18’ 또는 ‘광주사태’로 불리다 30여년 만에 불의한 신군부에 맞서 싸운 민주항쟁으로 자리매김했다.

휴전한 지 65개 성상이 지나도록 정명을 얻지 못하는 ‘6·25’도 있다. 6·25전쟁, 6·25동란, 6·25사변, 한국전쟁, 조국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 조선전쟁…. 세대와 이념, 이해관계에 따라 관점이 다른 탓이다. 어느 명칭을 쓰느냐에 따라 도발 주체가 뒤바뀔 우려마저 낳는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에도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그간 4·3은 폭동, 반란, 학살, 사건, 봉기, 항쟁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다. 제주 인구의 10%인 3만여 명이 희생된 이 참극이 지금껏 성격 규명조차 이루지 못한 게다. 그 이유는 이념적 접근 탓이 크다. 모두가 진실을 외치지만 지목하는 방향은 다른 것이다.

공자는 정명순행(正名順行), 이름을 바로 해야 만사가 잘된다고 했다. 아픈 역사의 정의로운 청산과 치유를 위해서는 4·3의 정명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팩트를 외면한 채 누구는 정의라 하고, 누구는 불의라 하는 상태에선 ‘정명(正名)’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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