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롱장을 가다
벨롱장을 가다
  • 제주신보
  • 승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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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햇볕이 좋은 날 세화 해변 방파제를 따라 장이 섰다. 바다를 등지고 기타 연주를 하는 젊은이가 장마당 분위기에 흥을 돋운다. 변변한 매대도 없이 맨바닥에 보자기만 펼쳐도 좌판이 된다. 장이라 하기엔 소박하기 그지없고, 물건이 많은 것도 아니다. 토요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열리는, 감성과 낭만의 장터로 자리했다.

손재주 좋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젊은이들의 개성이 그 상품의 얼굴이 된다. 수제품이라 대량생산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결혼 이주민, 도민, 공방 운영자가 함께하는 번개장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주로 액세서리, 인형이며 간식거리다. 거기에 생활용품들이 젊은이다운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빛을 보는 날이다.

장사꾼 같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아마추어들이 만들었지만 유명인의 공예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색적인 장마당에 소문을 듣고, 구경삼아 찾아왔다는 여행객과 도민들로 붐빈다. 세상에 흔치 않은 물건을 선물이나 기념품으로 고르며 좋아한다.

평소 몸에 걸치는 액세서리에 관심이 없다. 결혼 예물로 받은 보석들이 이름값도 못하고 장롱 속에 잠자고 있는 처지다. 한데, 수수한 목걸이 하나에 눈이 번쩍 띄었다. 가늘고 긴 갈색 줄에 달린 조그마한 녹색의 돌멩이 한 알. 단순하나 세련된 세공이 돋보이는 물건에 시선을 뺏겼다.

가슴이 콩닥콩닥 띄었다. 내 시선을 따라가던 주인은 외국인이다. ‘재스퍼’라는 원석을 직접 깎아 만들었단다. 순간, 장롱 속에 걸린 옷가지들을 머릿속으로 훑었다. 생각 외로 가격도 부담이 없다.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의 만족감을 오랜만에 가져 본다. 그가 태어난 곳의 향수를 담았을 것 같은, 가족을 떠나온 고향의 그리움이 느껴졌다.

제주 오일장은 이미 향토시장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반면 유래가 깊지 않은 소규모 벨롱장은 도민, 이주민, 관광객이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장터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밀물로 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두어 시각의 매력은 좀체 식을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에서 다민족·다문화 시대로 가고 있다. 서로 어울려 소통하고 화합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수용해야 할 과제다. 다민족 풍속과 이색적 문화가 만나면 새로운 문화를 낳는다. 친숙한 것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길이다.

관광지에 제주다운 기념품이 별로 없다. 여행 기념으로 살 게 없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분위기에 흠뻑 빠져 구경하다 벨롱장에 참여하고 있는 재주꾼들의 손끝에서, 제주다운 토산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오래 간직하려면 조잡하지 않고 세련된, 다양한 볼거리로 관광객의 마음을 홀리는 토산품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관계기관이 관심을 갖고 뒷받침이 된다면, 내국인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제주하면 벨롱장을 떠올릴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여러모로 활성화되면 구경꾼들이 몰릴 테고, 벨롱장터에서 만족할 만한 선물 꾸러미를 챙겨갈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지역주민은 물론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 이들에게 정착의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